김창식 오사카관광대학개원교수·논설위원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영 정(진시황제)은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다.

영원히 죽지 않기만을 바랬다. 사마천의 사기에 제나라 방사 '서복(徐福)'이 진시황제에게 이르기를 "아득히 머나먼 동쪽 바다 한 가운데 영주산에 신선이 살고 있는데 거기 가면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할 수 있습니다"고 상소하자, 시황제는 즉시 그것을 구해 오도록 했다.

기원전 219년 서복은 80여척에 백공, 동남동녀 3000명, 오곡백과를 실은 선단을 꾸리고 거친 동쪽 바다로 항진해 이윽고 한려수도의 남해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영주산(한라산)에 당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중·일 서복연구가들은 한결같이 서복일행은 당초 조천에 당도해 신선을 찾았으나 뵙지 못하고 서쪽으로 70리를 돌아 정방폭포에 이르러 불로초를 손에 넣고는 일본 사가현 모로토미에 상륙해서 거기서 왕(權現)이 됐다는 학설을 펼치고 있다.

당시 정방폭포 암벽에 고대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오랜 세월의 풍파로 인해 아래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다행히글자가 식별이 가능해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서복연구가들은 암벽의 고대문자를 '서불과차(서복이 여기를 지났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지금으로부터 2200여년전 서복일행이 제주와 일본에 남긴 발자취는 현대에 이르러 국제관광의 교류아이콘이 돼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의 서복탄생지와 서복동도의 항구도시에서는 서복공원을 조성해 그곳에서 제례행사와 각종 바이오축제를 개최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고 일본의 사가현에서는 ㈔서복협회가 중심이 돼 서복유적을 지역관광의 성장기반으로 다져나가고 있다.

특히 사가市가 ㈔서복협회와 민관프로젝트 공동사업으로 서복장수관의 약용식물원을 조성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시사점이라 하겠다.

국내에서도 서복일행이 지나갔다는 남해, 함양, 거제 등지에서 서복유적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서복테마파크를 조성해서 관광명소로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에서는 2003년 9월 서귀포시가 절경을 자랑하는 정방폭포 위에 서복전시관과 서복공원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테마파크로 조성해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관광객 발길은 뜸해서 존재감이 무색할 정도이다.

점차 쇠퇴현상을 보이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올해는 ㈔제주서복문화국제교류협회의 협조를 받아 특별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과연 기대수준의 방문객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운영조직과 관광상품, 홍보마케팅 등이 부실해 관광자원이 사회·문화적, 경제적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광업계가 나서서 서복공원을 국제관광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제주도가 나침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관계지역과의 공영발전의 협력체계를 아우르는 공조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령 관계지역간에 '국제서복문화촉진협의회' 기구를 통해서 실효성 있는 공동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한·중·일 해당 지역간 서복항해루트를 개설해 역사문화기행의 크루즈여행, 신선불로초 식도락관광, 동남동녀(수학여행단)교류, 지역토산품 등을 국제관광상품으로 개발 홍보함은 물론 제주서복축제(각지역 의식주 행사, 국제회의, 지역물산전, 레저스포츠, 음악예술)등을 대대적으로 개최해서 국제관광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으로 당국은 고대 서복이라는 불로초 사자가 제주를 탐방해 남긴 발자취와 유적을 국제관광자원으로 되살려서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놓을 수 있도록 실효적인 대책마련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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