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희 청소년기자

얼마 전 현기영 작가가 제3회 제주 4.3평화상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작가는 제주 출신으로 4.3의 비극을 다룬 [순이 삼촌]을 발표했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4.3에 대해 노력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넌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다~주/

이렇게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4월을 우리 엄마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 말씀하신다. 

나의 외할아버지께서는 4·3사건 당시 목숨을 위협받으신 적이 있다. 예래 청년회 활동을 하고 있었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여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경찰에게 붙잡혀 나무에 눈이 가려진 채 묶인 채 질문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살려 달라'고 할 때마다 총을 쏘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던 외할아버지는 대답대신 질문을 던진다.

 "내가 왜 죽는지, 그 이유는 알고 갑시다."

외할아버지는 이유도 모르게 잡혔다가 질문 하나 잘 하여 살아나셨고, 고문 도중 생긴 입술의 상처를 우리 엄마는 뭣도 모르고 부끄러워했단다. 그 후 외할아버지는 편두통과 방광염에 시달리다 어린 아들과 딸을 두고 23년 전에 돌아가셨다. 

우리 외할아버지 뿐이겠는가! 4·3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총 3만 명,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에 1이 달하는 숫자였다고 하니. 피비릿내가 진동을 했을 듯하다. 나는 지금 그 피비릿내가 진동했던 노형동에 살고 있다. 현기영 작가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작품이 아니었으면 나는 노형동에 살면서도 이곳이 학원도 많고 아파트도 많은 잘나가는 동네? 정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아왔는데도 4·3사건에 대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막음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것이다. 그래서 4·3사건은 우리에게 교과서에 적힌 단 한 줄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숨긴 기억은 그 분들이 돌아가시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 되는가??라는 책에서 트라우마는 3대까지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다. 4·3사건에 대한 그들의 고통은 우리에게 이어진다. 우리 엄마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며 우울해지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현기영 작가도 어린 시절에 겪은 4.3의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것이 참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순이 삼촌'에서 실존 인물인 순이 삼촌은 4·3사건의 끔찍한 일 때문에 환청을 들으며 미치게 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지금 그 당시의 트라우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방치하고 모른 척하면 제2의 순이 삼촌이 나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고문을 당할 것을 뻔히 알고도 [순이 삼촌]을 쓰신 현기영 작가의 정신도 바로 이곳에서 출발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올 해는 4.3사건 71주년이다. 정부의 지원금이 작년보다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원금이 줄어들면 우리 학생들이 4.3을 알고, 기억하고, 4.3의 피해자들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엄마처럼 고문 때문에 생긴 당신 아버지의 상처를 부끄러워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나도 작년 70주년 덕분에 [순이 삼촌]도 읽었고, 글쓰기 대회에 나가려고 조사도 했었다. 그런데 올 해는 너무나 잠잠하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제대로 알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속에서는 곪아가는 종기를 감추면 암이 된다. 그러니 더 커지기 전에 종기를 수술하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4.3평화상은 주면서 지원금을 줄이는 이 상황은 무엇인지 어린 나는 아직 궁금하다. 신성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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