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철 시인·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제주특별자치도사무총장

한국 화단의 거목이며 원로인 장리석 화백이 지난 3월 5일 향년 10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평안남도 평양 출생인 장리석 화백은 아내와 자식을 고향에 두고 친구인 이중섭과 함께 금강산호텔에서 벽화 작업 중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월남해 제주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실향민 화가 중 한 명이다.

장 화백은 1951년 1월 대한민국 해군 정훈실 군속 화가의 신분으로 제주에 입도해 오현중·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는 등 4년여간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장 화백은 2005년 자신이 평생 소장해온 미술작품 110점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 했다.
가치로 따지면 200억, 300억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제주도와 기증 협약서를 통해 기증에 따른 후속 조치로 '장리석 기념관'을 마련하는 한편 사후에는 노형동 산 18-1번지에 위치한 제주애향묘지 내 이북 5도 묘역에 잠들기로 하고 타인이 소장한 작품도 구입하는 등 지속적인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에 도내·외 언론은 장 화백의 작품 기증이 "도내 최대의 경사이자 기증 문화를 위한 빛나는 선행"이라고 평가했으며 한국일보는 사설을 통해 "제주도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경사요 빛나는 선행"이라며 앞으로 작품 기증에 따른 후속 조치에 신경을 쓸 것을 권고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110점의 작품 중 대부분은 지하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고 10여 점만이 상설 전시 중이다.

고인은 생전에 수차례에 걸친 필자와의 만남에서 해방 전 북한에서의 활동은 물론이고 피난시절 이중섭 화가와의 제주생활상과 박수근 화가와의 관계, 일본 유학시절 등 대한민국 근, 현대사에 걸친 드라마틱한 삶을 안타카운 심정을 담아 6시간 분량의 녹음으로 남겼다.

따라서 필자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원도정이 정책공약으로 발표했던 통일동산과 통일회관 조성 계획의 일환으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와서 작품을 기증했으니 이제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통일미술관 이름으로 작품의 격에 맞는 단독 전시공간을 마련할 때가 됐다.

고(故) 장리석 화백은 "죽더라도 마지막 소망은 정신적 고향인 한라산자락 이북5도 묘역에서 당신의 작품을 내려다보며 잠들고 싶다"라고 했는데 그 꿈마저 못 이루고 삼팔선 근처 파주시 이북5도 동화경모공원에 잠들었다니 필자 또한 실향민 2세로써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제주 해안의 풍광과 제주해녀의 강인함 등을 소재로 제주의 랜드마크인 한라산과 조랑말까지 제주를 상징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 중 '남국의 봄'은 서양 언론이 "마치 음악 선율이 흐르는 듯하다"라고 극찬했다. 

장 화백은 1956년 창립미술가 협회 창립위원이며 서라벌예술대학교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구상전 회장 등으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6회 입선, 4회 특선, 제7회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보급 자료와 피난시절 종이가 귀해 너덜너덜한 화선지에 그린 그림들이 여건이 안 좋은 고 장리석
화백의 사저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이에 필자는 제주도에 거듭 바란다.

자식새끼 하나 없이 외롭게 살다간 고인을 위해서도 아니, 그가 남긴 소중한 작품들을 위해서도 생전에 고인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던 "성냥갑보다 못 한 막사인" 제주도립미술관내 '장리석기념관'을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림으로 운영해 줄 것을 2만3000명 제주지구 이북도민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부디 북녘 고향땅 하늘에서 영면하길 도민과 함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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