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교수·논설위원

지방자치가 부활된지도 20여년이 경과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주민 스스로가 행복한 삶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자립적 발전 체제를 구축하는 등 여러 면에서 상당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관선시대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정책결정 과정일 것이다. 관선시대의 정책결정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도 있었지만 공무원과 전문가의 가치중립적인 전문적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이뤄졌다.

반면 지방자치시대의 정책결정은 전문적 합리성보다는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더욱 존중하는 정치적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행해진다. 정치적 합리성이란 특정 정책안을 결정함에 있어 해당 지역의 다수의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은 안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치단체들은 다소의 행정비용이 증가하고 집행이 지연되더라도 이를 민주주의의 최소 운영비용으로 보고 지역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대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 목소리가 크고 물리적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일반 주민들의 의견인양 포장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적 합리성과 정치적 합리성에 근거를 둔 정책결정과 집행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하나의 정책에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나름대로의 명분과 소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지역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에 관해서는 더욱 복잡하다. 행정학자들은 하나의 정책대안을 결집하는 과정을 보고 그 지역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평가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의 의견 개진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격렬한 논쟁은 자칫 집단 간 갈등으로 비약돼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갈등이 항상 역기능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조직론자들은 갈등을 암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이를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의 조직론자들은 갈등의 순기능도 인정하고 있고 혁신을 위해 갈등을 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기능을 초과할 정도의 역기능이 있다면 갈등은 제거돼야 한다. 따라서 갈등은 관리돼야 하고 통제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제2공항 건설 등 최근의 지역발전에 대한 논쟁들이 제주사회에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역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사실 갈등이 초래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오만에서 비롯된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는 '우리는 하나'라는 강한 제주공동체의식을 갖고 있다.

강한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지역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지사는 침묵하는 다수 도민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역사에 책임을 묻는 소신행정을 수행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신중치 못한 발언이 지역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시민단체를 포함한 자생적 단체들은 자신의 이념이나 가치가 제주발전의 전부인양 제주도민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주공동체의 결속력은 더욱 더 약화되고 갈등의 악순환은 고착화되며 도민통합의 추진력은 상실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 변화 속에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승화된 제주공동체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각자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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