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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걷고 싶은 거리 '간성 돌담길'오용순 수필가
오용순
입력 2019-04-07 (일) 14:16:24 | 승인 2019-04-07 (일) 16:47:40 | 최종수정 2019-04-07 (일) 17:00:29

조선시대 본디 제주성(濟州城)은 동쪽으로는 남수각에서 산지천 서안을 따라 북성교로 이어졌다. 

1565년(명종 10) 6월 114대 곽흘 제주목사가 동쪽 동산 위에서 제주성내를 한눈에 내려다 본 후 방어적 측면에서 산지천 서안변의 성을 허물고 제주읍성을 동쪽 동산 위로 확장하자 폭우 때마다 둑의 역할까지 하던 성이 없어져 산지천이 범람하면 성안에 침수 피해가 자주 발생했다.  

그로부터 215년 후인 1780년(정조 4) 김영수 235대 제주목사는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해 옛 성터의 성곽 즉 산지천 서쪽변을 따라 이중으로 제방용 성곽을 길이 551보(약 680m), 높이 9척(2.7m)의 간성(間城)을 쌓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성 사이에 성을 쌓았다 하여 간성이라 한다

그리고 간성 남북에 두 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남문을 백성을 소생시킨다는 뜻의 남문인 소민문(蘇民門)과 복을 받는다는 뜻의 북문인 수복문(受福門)을 축조했고 산저교(山低橋)를 광제교(光霽橋)로 개칭했다.

1847년(헌종 13) 이의식 목사는 수복문을 중인문(重仁門)으로 개편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중인문이 먼저 훼철되고 이어 1915년 소민문이 훼철돼 오늘날 간성의 자취는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동문로터리 제주신협 맞은편의 옛 분수대가 있던 터에서 북쪽의 동문교 왼쪽 골목에서부터 광제교-북성교-산지교-용진교까지 거리의 이름을 간성로라 정하고 옛 간성을 복원하면 산지천에서 누구나 한번쯤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성로 곳곳에 제주의 왕벗꽃을 심어 그 정취를 더한다면 새로운 명소인 '걷고 싶은 거리 간성 돌담길'이 생겨나 산지천 가로의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용순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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