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논설위원

지난 3월 말 정부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올 연말쯤 국회 심의 의결 절차가 끝나면 30년 만의 전면 개정인 셈이다. 비록 작년에 분권 개헌이 무산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멈출 수 없는 자치 분권' 의지만큼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럼에도 도민으로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복잡 미묘한 심정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개정안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용·보완시킨 '자치 특례'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주민조례발안제 도입, 주민소환·주민소송 청구요건 완화, 주민자치회 설치 근거, 지방의회 전문성과 독립성 보장 등이다.

특히 특별자치도 연착륙에 필요한 6단계 제도 개선안이 2년 반 넘게 정부의 무관심과 형평성 논리에 막혀 대책 없이 유보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게 제주는 분권의 실험장일 뿐, 고도의 자
치권 보장 약속은 립 서비스라고 하면 억측일까.

한편, 지방자치법 개정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민투표를 통해 어떤 형태의 지방자치단체를 구성할지 선택권을 궁극적으로 주민에게 준다는 점이다. 다만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정치 일정상 정부 구상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제주형 분권 모델의 창의적 모색 차원에서 꼼꼼히 따져볼 가치가 있다.

정책학에서 제도나 정책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시차적 접근법(time difference approach)이 활용된다. 시간을 중요한 설명변수로, 복잡하고 동태적인 정책과정을 파악한다. 시간의 순서와 간격, 시간 지체에 대한 적절한 고려가 배제되거나 동일시간대 상호 모순적 요인들이 공존할 때 정책 혼란이나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제도 개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조직 책임자들의 지적, 정치적 능력, 시간적 리더십 강화를 주문한다.

시계를 되돌려 2017년 6월 도의회 의장실로 가보자. 더불어민주당 3명의 국회의원, 도지사, 도의회 의장 등이 참여한 소위 3자 회동이 열렸다. 지방분권 개헌 결과를 지켜보자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도 넘은 한 마디 제동에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중단된다.

이날 종이 쪼가리가 될 뻔한 행개위 권고안은 1년 반이나 캐비닛 속에서 잠자다가 지난해 11월 원희룡 도지사의 시장 직선제 전격 수용 발표로 기사회생한다. 지난 2월 말 시장 직선제 동의안은 우여곡절 끝에 도의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도의회를 통과했으나 방식과 내용 면에서 제주도와 도의회가 보여준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상임위인 행자위가 가부의 결도 없이 본회의로 떠넘긴 것은 난센스다. 어떻게 주민들이 위임한 대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원희룡 도지사 스스로 시장 직선제 단일안을 고집하지 않겠다는데 그렇다면 의회 차원의 수정안이라도 만들려는 시도 정도는 해야 했었던 게 아닌가.

시장 직선제가 특별자치도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도민의 변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 강변할지 몰라도 논쟁의 여지가 분명 있다. 법인격 없는 행정시장의 애처로움을 익히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도청 과장 보다 못하다는 행정시장이다. 직선으로 뽑는다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퇴행과 비대해진 제왕적 도지사의 폐해가 해결될까. 언감생심 현 제도의 틀 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어찌 됐든 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면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나 읍면동 자치를 가져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행정체제 개편을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각성된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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