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 논설위원

음식은 입는 옷과 사는 집과 함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사항이다. 우리 속담에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그중에서도 먹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이어서 옷이나 집보다 우선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먹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이야기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들 중 그나마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다고 하는 것도 국민소득이 뒷받침이 되니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신생 독립국가들이 독재나 내전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우리는 행운이었다고 자부하게 된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중에서도 특히 우리 고장에서 먹는 모임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50여 년 전에만 해도 해마다 겪었던 보릿고개 영향일 수도 있다. 1차 산업 시대에는 부(富)가 농토에서 생겼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지방의 음식 문화가 앞선 것도 호남평야에서 많은 농산물들이 수확되고 부가 축적돼서 그리됐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대화 중에 음식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도 먹방(음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나 음식에 관한 칼럼들이 판치고 있다.

하지만 소위 지식인들 모임에서도 음식 얘기가 자주 회자(膾炙)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특히 돈 자랑하듯이 외국 여행 다니면서 맛있게 먹은 음식 얘기만 하는 소위 지도층을 보노라면 이것이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몽고의 속담에 "현자는 사상을, 착한 사람은 세상사를, 그리고 속인은 자기가 먹은 음식을 화제로 삼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시는 분들까지 자기가 먹은 음식 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헤르만 헤세는 시 '행복해진다는 것'을 통해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라고 읊조리고 있다. 그렇다. 우리들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행복하게 죽으려고 열심히 산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이 사람들마다 그들이 가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워라벨(일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시피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부(富)나 명예를 이룬 것을 충실한 삶을 산 것으로 여겨 행복해하는 분들도 꽤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을 때가 되면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을 진정한 행복으로 여긴다. 공자나 석가, 예수의 삶을 즐거운 삶이나 충실한 삶이라고 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의 삶이 매우 가치 있는 삶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보면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지도층이라면 사회를 위해서 무언가 이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기가 쓰는 돈의 10%만 사회를 위해 써도 우리 사회는 한결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작년에 재산이 많다고 자랑하던 지인이 죽었을 때도 느꼈지만 며칠 전에 별세하신 재벌 총수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의 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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