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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담론] 올해도 봄날은 간다강용희 (사)제주역사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강용희
입력 2019-04-21 (일) 17:23:19 | 승인 2019-04-21 (일) 17:38:08 | 최종수정 2019-04-21 (일) 17:38:08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는 봄이면 한 번쯤 읊조려 보는 노래이다.
소풍날처럼 들뜬 노랫말로 환한 봄기운을 마냥 찬사하는 곡들이 유독 이 계절엔 흔하고 많아서일까, 이 노래는 우리가 잠자코 묻어두고 사는 봄의 애상을 더 잔잔하게 불러들인다.
한국전쟁 포성이 잦아든 1953년 백설희가 처음 부른 노래이지만 그 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모두 다 개성과 특징들이 있지만 그중 장사익이 부른 '봄날은 간다'는 구성진 가락에 애잔하게 흐르는 목소리로 우리네 정서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데 처연하기까지 하다.
동백꽃이 뚝 뚝 떨어진 자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흩날린 후 화사한 유채꽃이 이어지면서 2019년 봄날도 가고 있는데 세상은 언제나처럼 시끄럽고 우울하며 어지럽다.
며칠 전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흉기난동 사건은 먹먹하다.
지나가고 있는 봄 만큼이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5명의 영혼과 날벼락을 맞은 그 가족들은 어떻게 위무 받아야 하고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8명으로 세계신기록이란다. 신생아는 32만명으로 1971년생 94만명과 비교해 3분의 1수준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도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남북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평화 정착으로 본격적인 남북화해 분위기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결렬로 마무리돼 교착상태에 들어갔다.

동력을 되찾기 위한 최근의 한미정상회담도 성과 없이 한미공조만을 되뇌며 마무리됐다.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지만 과연 입장 차가 큰 북미를 조율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올봄 미세먼지는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비상저감조치가 발효되는 등 국가의 주요 정책 이슈로 등장했다.
제주지역에도 봄날의 이슈는 적지 않았다. 의료 공공성과 충돌하면서 공론화 결과와 배치된 조건부 개설허가를 냈던 영리병원 문제는 허가 취소로 지리한 법적 공방 등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제2공항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과제도 만만치 않고 강정해군기지 동네의 깨어진 공동체는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지 난망하며 4·3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세월호는 다섯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채 그날 전복돼 있던 맹골수도 슬픔의 바다는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아직도 천안함 용사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또 봄날은 가고 있다. 봄이 몇 번 더 지나가야 출산율이 회복되고 4·3과 세월호를 보낼 수 있으며 분단된 이 땅에 평화가 피어날까.

330년 전 원도심에서 짧은 유배생활을 했던 노구의 송시열은 "한라산에는 눈이 잔뜩 쌓였고 산 아래는 꽃들이 화려하게 피었다"(漢之山積雪甚厚 而山下則花事爛)고 제주의 봄날을 적었다.
우암은 제주에서의 봄날이 생애 마지막 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떨어져 버린 벚꽃에, 노란 유채꽃에, 4·3과 세월호의 위무 받지 못한 원혼과 함께 올해도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이야 억겁의 세월을 거쳐 오고 있는 자연의 섭리이니 거역할 수 없는 것인데 올해의 봄은 어떻게 배웅해야 할지 고민이다.
가장 화사하지만 슬프고 짧아서 서러우며, 그 속절없음에 사무치는 봄은 이 노래 3절처럼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얄궂은 그 노래 위로 봄날은 간다.


강용희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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