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근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장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에게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만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라"고 했다. 바로 선생이 선포한 아동권리공약 3조의 내용이다. 또한 1989년 유엔아동인권위원회는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여가와 놀 권리'를 채택했다. 아동에게 '교육의 기회'와 함께 '놀 기회'도 적절히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치며 아동의 '교육의 기회'에 대해 권리라기보다 의무에 가까울 정도로 집중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지나친 교육열과 과다한 경쟁으로 교육수준에 따라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가 달라지는 '학벌사회'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일 정도이다.

반면 '놀 기회'에 대해서는 아동의 권리 차원이 아닌 '일탈' '문제 행동' '위험' '게임'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돼 왔다. 이렇다 보니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사회적인 기반 시설이나 교육과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하다. 놀이터는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조성돼 특정한 연령층의 놀이공간이 됐고 그마저도 부족하다. 학교 운동장은 아동들을 위해 천연 잔디로 조성하고 있지만 정작 잔디보호를 위해 이용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최근 학교 방과후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체육과 문화예술 활동 기회가 있지만 모든 학생을 수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움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인식 속에 '놀 권리'를 '교육의 기회'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한다는 점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동의 교육에만 편중된 현상은 곧 아이들의 정서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예로 우리나라 아동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꼴찌이며, 2003년 이후 아동청소년의 자살률은 압도적인 전 세계 1위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부모가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아동의 놀권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곳곳에 놀이터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보다 아동의 특성에 맞게 친환경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또한 보다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어린이보호구역이 확대되고, 안전사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아동의 놀이 또는 '놀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 학부모나 교육현장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놀이운동가 편해문씨는 아동에게 놀이는 '밥'이라고 했다. 그렇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 놀이는 아동들의 삶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일이다. 얼마 전 제주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노형동 내 4개 초등학교 4·5·6학년을 대상으로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응모사업을 했었다.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우리가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교실도 좋지만 운동장은 더 좋아요' 등 응모한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은 바로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시간과 공간을 달라는 것이다. 

이 말에 '놀 권리'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부모의 입장 즉 어른의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다칠까 싸울까 혹은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줘야 한다. 친구와 다투더라도 조금 다쳐도 성장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고 그저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안전한 놀이공간을 조성하고 촘촘한 안정망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월 5일 어린이날이 아동들이 유일하게 노는 날이 아니라 어른들과 함께 유일하게 놀아주는 날로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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