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전 UNITAR제주국제연수센터소장·논설위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딜까. 여러 조사에서 덴마크가 1위로 나왔다. 북유럽에 위치한 인구 560만 명의 조그만 동화의 나라. 바람이 잦고 날씨가 우충충한 나라. 무엇이 덴마크를 행복한 나라 1위로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다수가 '걱정거리 없는 상태'라고 대답할 듯하다. 우리는 각자 어떤 걱정거리를 갖고 있을까. 아마도 질병, 자녀 진학 문제, 취업, 노후 대비 등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덴마크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완벽한 의료보험 제도로 치료비를 한 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학비가 없고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면 국가가 월 100만 원 정도 생활비를 보조해 준다. 그럼에도 고등교육의 질을 유지해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해냈다. 고용주의 직원 해고가 자유롭지만 근로자의 노동권이 폭넓게 보장되는 노사제도 하에서 거의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있으며 설령 해고를 당해도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이 쉽다. 늙으면 요양원에서 세상 떠나는 날까지 정성스레 돌봐준다.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책임을 다하니 걱정 '제로'의 삶을 누리고 있다.

덴마크인들의 행복을 한마디로 응축한 단어가 '휘게(Hygge)'다. 우리말로 옮기기 어렵지만 '안락' '편안'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민들이 문화적으로 덴마크인들의 인생관과 가장 비슷하게 살고 있는 듯하다. 제주 토박이들은 덴마크인같이 마음이 착하고 여유롭고 낙천적이다.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성향을 띤다.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청정한 자연과 맑은 공기를 찾아 제주로 이사와 한 박자 쉬어 가는 삶을 살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단골인 제주의 골목 횟집들을 보면 그날그날 잡은 활어만으로 횟감을 마련한다. 그래서 날씨가 나빠지면 낚시를 못 나가 휴업하기도 하고 '신선한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마감합니다'라는 안내판을 내붙이기도 한다. 예고 없이 며칠간 휴업하는 식당도 있는데 나중에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그냥 날씨가 좋아서 놀러 다녀왔다고 그런다. 애써 식당을 찾아 간 손님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인도, 손님도 모두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는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소확행'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찾는 소박한 즐거움을 일컫는다. 덴마크인들의 '휘게'와 맥을 같이 한다. 제주에서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왔다. 그러다보니 다들 지쳐 있다. 어릴 때는 살인적인 과외와 시험에 억눌리고 대학에 가서는 고시다 취업준비다 해 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출세와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지만 모두에게 너무 피곤한 인생이다. 우리에게는 제주에서의 삶처럼 이를 치유할 행복 처방이 필요하다.

인생은 단한 번뿐이다. '욜로(YOLO)'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덴마크 사람들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맘껏 즐기면서 행복을 누린다. 물론 전반적인 국가 발전 수준과 사회보장제도, 사람에 대한 신뢰가 기초가 돼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다행히 제주인들의 인생관은 육지 사람들보다 덜 강박적이고 덴마크인들처럼 여유롭다. 극도의 경쟁 사회인 한국에서 어쩌면 제주는 그나마 숨통이 트인 곳인지도 모른다. 제주도의 행복관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육지로 확대돼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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