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훈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섬학회장

제주 4·3 북촌리 고완순 할머니와 동광리의 홍춘호 할머니가 4월 29일 필라델피아와 지난 1일 미국 하원 의원실에서 증언을 했다. 그들은 71년의 시간을 넘어 미군정시대 미군과의 대면 상황을 증언했다. 고 할머니는 1947년 가을 미군 장교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자신의 삼촌을 통역요원으로 고용하기 위해 마을을 방문했으며 미군과 마을 사람들의 대면 상황을 말했다. 미군들이 자신들을 잡아갈 것이라는 극도의 공포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북촌리는 부당한 미군정에 마을단위의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 참여했다. 그 일은 1947년 가을의 일로서, 1949년 1월 중순 한국군이 북촌리 마을을 공격해 마을 사람을 집단 학살 하기 훨씬 전의 일이었던 이러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증언했다.

홍 할머니도 미군과 한국 군대가 같이 주둔한 모슬포 근처에 동광 마을이 있어서 미군들을 거리에서 만난 적이 가끔 있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잡혀갈 것이라는 공포감에 있었지만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미군정을 따라 다니면서 초콜릿을 달라고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고 했다. 

1948년 12월 한국 군인들이 동광리를 습격해 마을을 불태워서 한라산의 두 개의 오름으로 피신해 굴에서 산 생활을 소개하면서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겨 잡힌 사람들은 바로 정방폭포에 수장시키는 상황을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동네 사람들은 눈위의 발자국을 지워 동굴에 숨어살다가 이듬해 4월 자수해 6개월간의 수용소 생활을 증언했다.

이 증언의 토론자로 참여한 미국 언론인 도날드 커크씨는 "4·3 피해 마을에 대한 두 할머니의 직접 증언은 감동 그 자체였고, 마을 단위에서의 직접 체험을 전한 역사적인 첫 증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군의 존재가 제주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였고, 마을 방문이 있었다는 가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직접 체험자들의 최초의 미국 사회 증언이어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Uncovering Jeju Revolt : Korea Times, 2019년 5월 4일). 증언에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다음날 미국 국무부의 고위 관리와의 만남에서 이들의 증언을 전달했다. 커크 기자는 이를 뒷받침할 당시 미국 시카고 지역의 시카코 트리뷴이나 시카고 데일리 뉴스의 기자의 제주 취재 기사가 있다고 알고 있어서 이를 찾아낼 것을 요청했다. 당시 미국 군인들의 증언이나 제주주민의 직접 증언도 더 찾아낼 수 있다면 미군정의 인권탄압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주대학교 연구소는 미군 장교와의 대면 상황을 증언한 북촌리와 동광리 마을에 대한 한미 대학 연구소 공동조사를 미국정부에 제안했다. 제주의 북촌리와 동광리 주민들이 제주대와 천주교 제주교구청과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한국연구소의 지원으로 마련된 현장에서 제주지역 교사, 국내외 언론인, 학생들, 음악가, 학자들과 미국 엔지오(NGO)들의 격려 속에서 제주 4·3의 인권 상황을 증언하고 마을단위로 배상하는 배상적 정의를 말하고 마을단위의 화해로 치유하는 '제주 4·3의 마을 치유 해법'을 미국사회와 미국의회에 제시해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지난 1일 마크 다카노 하원 의원실과 주디 추 하원실에서도 정책보좌관 등 미의회 관계자들과 제주 4·3 간담회도 가졌다. 두 할머니는 제주 4·3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2020년 3월 제주 방문을 요청하는 서한을 마크 다카노 의원에게 전달했다. 제주 4·3 피해자와 젊은 후손들이 함께 어둠의 과거를 기억하며 밝은 내일의 빛을 찾는 미국 사회에서의 4·3 증언과 제주대 학생들이 제주 4·3 화해법의 미국 의회 제정 청원을 말했다. 학생들은 두 할머니와의 대담을 교육다큐멘타리 억류자(Detainees)에 담아 현장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시청했다. 1만2800명의 세계대학생 서명부를 담은 시디(CD)도 의원실에 전달했다. 미국 의회에서 4·3 증언과 화해법 제정의 소망을 말하는 4·3 간담회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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