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뜨락에 등꽃이 활짝 피었다. 책을 반납하고 서둘러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등꽃 핀 그늘 아래 앉아 숨을 고른다. 연보랏빛 향이 온몸을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퍼진다. 오랜만에 여유를 부리며 호강을 한다. 이런 게 호강이라면 얼마든지 하련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이게 목련꽃이 아니라 등꽃이지'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즈음, "이미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있다. 

등꽃은 연보랏빛의 콩꼬투리를 주렁주렁 매단 것 같은 형상으로 땅을 향해 피었다. 콩과 식물이라 거름기 없이도 잘 자란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 것이 등나무 가지인지 알 수 없다.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운다. 등나무 오른쪽 감기의 선수다. 곁에 있는 아무 나무나 붙잡고 하늘로 오른다. 어쩌면 무임승차의 대가라 해도 되겠다. 그래도 다행인건 등나무는 남의 등을 타고 올라가 예사롭지 않은 빛깔의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것도 땅을 향해, 마치 기도처럼 피어난다. 그 아래 쉬고 있는 지친 영혼들은 잠시 평안의 휴식을 취한다. 독하게 기어 올라가 기어코 뿜어내는 등꽃의 향기로 심신의 독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毒)에는 독(督)이 필요한 것이다.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라 빛 꽃타레 혼자서 등꽃 아래 서면 누군가를 위해꽃등을 밝히고 싶은 마음나도 이제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리 세월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추억의 꽃잎을 모아 또 하나의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하리 때가 되면 아낌없이 보라빛으로 보라빛으로무너져 내리는 등꽃의 겸허함으로 배워야하리
모든 생명들은 자기보존을 위한 생존법을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옆으로 누워 자라는 나무도 있다. 인도의 700년 된 반얀 나무는 옆으로 자라 사방 200미터가 넘는 그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아래 사람이 앉으면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 신화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인도 원정을 갔을 때 군사 7천명이 반얀 나무 아래서 쉬었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가 7천명을 품어 안은 셈이다. 사람은 한 사람을 품어 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이해인 등꽃 아래서)

주말부터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보고, 사람이 사람을 품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며 돌아왔다. 연극 속 주인공 이점순은 온몸에 독이 잔뜩 든 욕쟁이노인이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 딸을 키우려니 독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녀에게도 여자이고 싶을 때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혼자 된 여성을 관음의 시선으로만 보지 염려와 연대의 팔을 벌리지는 않는다. 그러니 욕쟁이 할머니가 될 수밖에. 그런 노인에게 갈 곳 없는 날라리 할아버지 박동만이 찾아온다. 방 한 칸 얻으러 온 것이다. '동두천 바람둥이 신사' 라고 자칭하는 박동만 할아버지. 하지만 그의 유머와 재치는 욕쟁이 할머니의 정신을 홀라당 빼앗아버리고 그 둘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리 욕쟁이 할머니라 해도 애교 섞인 사랑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법. 어느새 둘은 한 이부자리에 몸을 뒤엉킨 채 세상 편한 관계가 된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시한 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가자고 약속하나 그 둘의 보랏빛 행로를 가로막는 건…(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생략한다.

오랜만에 여한 없이 웃고 울다 나왔다. 내 옆의 관객 몇은 계속 훌쩍거려 자꾸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배우들과 사진 촬영을 하는데 잠시 듣기로는 용인에서 온 가족들이었다. 어느 부분이 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굳이 궁금하진 않았다. 연극이든 영화든 자신만의 삶의 어떤 이력 또는 기억들과 맞닿는 지점에서 웃거나 울게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마음이 쓰였던 건 주인공 할머니의 몸에 새겨진 독이었다. 욕으로 대신하는 저 독기가 풀리려면 몇 곱절의 사랑이 필요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 늘그막에 사랑과 유머가 풍부한 동반자를 만나긴 했으나 '그게 글쎄' 하는 생각. 

장-루이 푸르니에가 말한 "유머는 인생 최고의 진통제"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진통제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등꽃은 독기를 꽃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식물이다. 배배 꼬인 등줄기에서 어떤 힘이 솟아나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옛 사람들은 등나무의 배배꼬인 형상이 못마땅해서 소인배라 불렀다 하지만 그 쓰임새는 만만찮다. 줄기는 지팡이로, 가는 가지는 바구니를, 껍질은 종이의 원료가 되었다하니 얼마나 요긴한 삶인가. 그러니 배배 꼬였든 얽은 형상이든 나무랄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삶이 만만찮았음에 등을 쓸어줄 만은 하다. 꽃을 피우면 축복이라고 함께 기뻐해주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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