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문학평론가·수필가·논설위원

아침 일찍 현관문을 나선다. 아침 햇살은 여과 없이 잔디 위로 쏟아지고 있다. 가슴에 안겨드는 맑은 공기의 감촉이 상큼하다. 참새떼가 재재거리며 꽃나무 사이를 멈칫멈칫거리다 열어보며 부산을 떤다. 기름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 초록빛 윤기가 흐르는 제라늄 잎사귀, 칸나와 장미꽃은 비단보다 더 곱고 현란하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문우와 만날 캘리포니아 북동에 있는 모노레이크(Mono Lake)를 향해 출발한다. 폐쇄적이고 고여 있는 구정물 같은 도시를 떠나 잠시 낯선 곳을 찾아간다. 도시를 벗어나 지평선이 보이는 모하비 길에 들어서면 잡다한 일상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넓은 사막이 나오고 휘트니 마운틴(MT.Whitney)과 데스밸리(Death Valley) 사이의 북쪽 길로 접어든다. 파란 하늘과 눈 덮인 산이 뭉게구름과 함께 나타난다. 솟구친 산, 산이 겹겹이 연결된 우람한 산이다. 만년설을 보노라면 자연의 원초적인 힘 앞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은 나를 품고 등을 토닥이며 대범하라 한다. 이 맑고 편안한 자유스러움이여!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주변은 파피(Poppy)가 만개했다. 이 야생화는 한겨울에 가냘픈 햇볕과 바람, 건조한 흙 속에서 5월의 주황색 향연을 위해 애타게 기다려 온 것이다. 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풀잎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곳은 쉽게 비가 내리지 않는다. 연둣빛 싹을 틔우기 위해 물기가 있는 곳은 서로 엉키고 아우성치며 봄을 애타게 기다린 것이다. 그리곤 활짝 꽃 피워 열매 맺히고 키우는 수고가 끝나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의 보람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죽어간다.

다시 엔진 가속페달을 밟는다. 어느덧 깊은 산 속에 조그마하게 형성된 마을 앞에 넓은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집수면적은 서울의 1.3배에 해당하는 모노레이크다. 이곳 호수는 수정같이 맑기는 하나 폐쇄형 소금호수다. 바닷물의 5배나 되는 염분 등으로 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는 곳이다. 문우가 먼저 도착해 주차장 테이블에 앉아 있다. 

호수로 향해 걷는다. 청초하고 소박한 들꽃이 천지신궁(天地神宮)에 옮겨 놓은 듯 펼쳐져 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생(生)나비가 돼 꽃을 찾아 이곳저곳 카메라를 들고 펄펄 날아든다. 호수 가까이에서부터 기묘한 모양의 투파(Tufa Towers)가 있고 주변 산책로는 통나무가 깔렸다. 호수 위로 실바람이 분다. 물속에도 여러 모양으로 크고 작은 투파가, 자신의 그림자와 호숫물은 담소하고 있다. 하늘은 호수에 앉아 있고 호수는 하늘 높이 두둥실 떠있다. 

비가 안 와서 그런지 호숫가의 흙은 푸르스름하고 질펀한 곳에는 모기 크기의 검은 파리떼가 시루 안의 콩나물 같다.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 요커트(Yokut) 부족의 말로 파리를 모노(Mono)라고 한다. 버려진 염전(?)에서 풍기는 듯한 역겨운 냄새로 계속 코가 실룩인다. 물속에는 유일한 생명체인 새우 아르테미아(Artemia monica) 4~5종이 전부다. 이 새우는 35여 종의 바닷새와 200만 마리의 물새들의 먹이로 이곳에서 휴식과 영양을 보충하는 철새도래지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일부 물줄기가 이곳까지 들어오지만 뜨거운 사막기후 탓에 염수만 남게 된다. 
호숫가 주변에 있는 둥글고 얄팍한 돌을 수북이 줍는다. 호수 위로 물수제비를 어깨가 아플 정도로 계속 뜬다. 처음과는 달리 멀리 뜨지 않고 담방담방 튀기다 이내 가라앉는다. 차에 올라탄다. 역겨운 냄새가 내 몸에서 배어 나온다. 어쩌면 황망히 살아온 세월을 채우고 삭혀도 정화되
지 않은 내 삶의 냄새와 같은 것일 게다. 

벌써 햇살은 서산마루에 걸쳐 있다. 문우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 네바다주 타호레이크(Tahoe Lake)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크트웨인(Mark Twain)이라는 이름을 탄생케 한 곳, 고도시 버지니아시티로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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