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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담론] 문명의 세계관과 문화의 세계관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전가림
입력 2019-05-28 (화) 17:26:31 | 승인 2019-05-28 (화) 17:27:49 | 최종수정 2019-05-28 (화) 17:27:46

최근 국제관계의 화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양국 간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4월말 마무리 단계에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중 무역협상이 미국의 '관세폭탄'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합의문 초안을 45쪽이나 일방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월초 미·중 무역회담에서 실무적으로 의견을 모았던 7개 분야, 150쪽의 합의문 초안을 중국이 105쪽으로 줄인 뒤 미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중국이 삭제한 분량은 초안의 30%에 달한다. 양측이 "10%만 남았다"며 최종 조율을 통해 원만한 합의점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정상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 그렇듯 '트위터'를 통해 손해 보는 합의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장기전에 대비한 듯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또한 행정명령을 통해 스파이 활동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중국의 화웨이(華爲)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도 적극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5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자기 인종과 문명이 우월하다고 여기면서 고집스럽게 다른 문명을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다른 문명을 대체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평등과 상호 존중을 견지하고 오만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며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화민족은 5000여 년간 온갖 비바람을 겪었다"며 "싸우자고 하면 끝까지 상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미·중 무역 불균형의 문제나 패권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미·중의 갈등 속에서 나타난 중국의 세계관에 있다. 국제사회는 흔히 '무정부상태'라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약육강식에 의한 생사의 물리적 대결로 귀결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과 제도가 이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문명과 문화는 인류의 발전을 언급할 때마다 강조되는 개념이다. 혹자는 인류가 자연의 상태를 극복하고 물질적·정신적으로 진보한 상태를 뜻한다는 점에서 둘 다 일정한 공통점을 갖는다고 보고 이를 혼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개념이 완전히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화가 종교·학문·예술과 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반면, 문명은 보다 실용적인 생
산·공업·기술 등 물질적 움직임을 가리킨다. 

현대의 국제관계에서는 물질적 우열을 강조한 수직적 의미의 문명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의미하는 문화를 더 중시한다. 군사력이나 경제적 능력으로 대표되는 하드파워(Hard power)보다 매력이나 호감도의 증진을 강조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강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문명을 강조할까. 이는 사회주의적 체제와 이념이 유물사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 침탈을 전횡하던 시기는 문명의 대결이었다. 당시 물리적 폭력은 문명으로 포장됐고 그러한 세계관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관계는 철기문명이 석기문명을 개조하거나 대체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의 주제는 분명 '평화와 발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문명에 입각한 세계관은 시대착오적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없다. 
2014년 3월 시진핑은 유네스코에서 다른 문명 간 상호 존중, 조화 공존을 추진해 문명교류와 상호학습이 각 국민들의 우호를 증진할 수 있는 교량이 되고 또 인류 사회진보를 위한 동력과 세계평화수호의 연결 고리가 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문명'을 '문화'로 바꾼다면 '중국의 꿈'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전가림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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