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사회부 차장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9년이 지났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된 뒤 1910년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같은해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 집행을 앞둔 아들에게 직접 지은 수의와 함께 보낸 편지 한통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가슴에 새겨져 독립을 향한 염원으로 이어졌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목숨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국내 '대한매일신문'과 일제 '아사히신문' 등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글을 실었다.

지난 28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하얼빈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러시아 지역 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해 처음 공개했다. 이 기사는 안 의사의 의거와 체포, 재판과정, 사형집행, 매장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문 '쁘리아무리예'의 1909년 11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안 의사는 하얼빈 일본 영사관에서 진행된 첫 신문에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형국 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장은 "당시 러시아 지역사회에서 안 의사를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영웅'으로 표현하며 하얼빈 의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 속에서 조마리아 여사가 보여줬던 기개와 마지막까지도 일제에 굴하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의 강인한 정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더불어 '약육강식'의 시대를 넘어 평화를 갈구했던 그의 인류애적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