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무리. 이운철 시민사진기자.

5~6월 제철 맞아 무더위에 지친 입맛 자극
독특한 제주 음식문화와 지혜 오롯히 담겨

제주의 여름은 예나 지금이나 '자리'의 계절이다. 제철은 5~6월, 정식명칭은 농어목 자리돔과의 '자리돔'으로 제주에서는 주로 '자리'로 불리며 지역에 따라 '제리'나 '자돔'이라고도 하는 생선이다. 남해나 동해 일부 지역에서도 잡히지만 자리의 본고장은 역시 제주다. 척박했던 시절부터 제주사람들의 여름 건강과 입맛을 책임져온 자리와 함께 계절을 즐겨보자.

자리는 지금도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도민들의 여름철 별미이자, 타지 살이를 하는 도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입맛을 돋워주는 자리물회는 고추장을 써서 매콤하고 걸죽한 타 지역 물회에 비해 날된장으로 자리 살과 지방의 고소한 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뼈째 씹는 맛에 곁들인 제피 특유의 향까지, 상상만으로도 군침을 흘리게 한다.

자리물회 외에도 비늘과 머리, 내장을 제거하고 장에 찍어 먹는 강회, 통째로 구워 먹는 자리구이, 외간장으로 푹 졸여 뼈까지 먹는 조림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자리젓은 콩잎이나 배추 등 쌈과 어울려 밥 한 공기 쯤은 뚝딱 해치우게 한다.

테우로 자리돔 잡아 낚는 모습

먼 옛날에는 자리를 잡을 때 테우를 타고 둥근 틀에 매인 그물을 수중에 드리우는 방식을 사용했고, 1950년대 들어 작은 배 두척으로 그물을 수중에 깔아놓는 어법이 등장했다. 암초 지대에 그물을 놓고 자리 떼가 지나가면 들어올리는 방식이다. 수직그물의 그물코에 꽂히게 하거나 낚시로도 잡을 수 있다.

또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할머니들이 자리를 한가득 담은 구덕을 머리에 이고 "자리 삽서~ 자리~" 하며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자리를 직접 잡지 못하는 중산간 마을 등에서는 보리 한 말과 자리 한 말을 바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됐다.

자리는 보통 10㎝ 내외로 크기는 작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탓에 가까운 바다에서도 넉넉하게 잡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도 자리 한사발로 온 식구가 먹을 자리회를 만들 수 있는 고마운 식재료였다. 1910년 「한국수산지」에도 자리 그물망 282개가 제주도 전역에 널려 있을 정도로 자리 잡이가 많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고, 석주명 선생도 제주도민들의 '도민의 취미-자리회에 소주먹기' 등 여러 번 언급한 데서 도민들의 오랜 자리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마을별로 자리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보목 사람이 모슬포 가서 자리물회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물살이 센 모슬포나 가파도의 자리는 크기가 커서 구워 먹기에 좋고, 보목동 자리는 뼈가 부드럽고 맛이 고소해 강회나 물회로 먹기에 좋고, 비양도 바다의 자리는 자리젓 담기에 좋다고 전해진다.

자리에는 제주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지혜도 담겨 있다. 

먹을 것 구하기에 바빴던 시절에는 요리를 할 여유가 없다보니 제주음식은 되도록 간단하고 빠르게 먹는 음식이 주를 이뤘는데, 자리가 종종 올라가는 여름 밥상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보리밥과 된장국, 김치, 된장, 젓갈, 나물, 푸성귀 정도가 기본이고 조금 나은 상차림에는 자리 등 생선이나 고기가 곁들여졌다. 반찬수가 적어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지만 자리 하나만 더해져도 싱싱한 채소와 함께 영양 면으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자리는 뼈째 조리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칼슘은 물론 단백질과 지방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물회에 곁들이는 씁쓰름한 제피나 산초는 비린내를 잡아줄 뿐만 아니라 식중독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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