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중등국어교육연구회(회장 김경도)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제민일보사가 후원하는 제30회 전도 중·고등학교 한뫼문학백일장이 지난 8일 아라중학교에서 열렸다. 총 21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룬 이번 행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명실상부 도내 최대의 권위 있는 학생 백일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교급별로 운문 부문과 산문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 이번 행사는 '길, 달팽이, 그릇'(중학교부), '결, 유튜브, 습지, 간세'(고등학교부)를 제재로 해 실시됐다. 고등학교부 운문 박민정(서귀포여고 2), 산문 김현주(서귀포여고 1), 중학교부 운문 허혜원(한라중 3), 산문 김수은(귀일중 3) 등 4명의 학생의 작품이 부문별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고등학교부 산문 최우수
'결' 서귀포여자고등학교 1학년 4반 김현주

해마다 여름이면 이 조그마한 섬을 찾는 내 또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처음 마주친 것은 허 씨 할아버지 댁에서였다. 허 씨 할아버지는 밭에서 사과, 배, 감자, 당근, 배추, 상추, 고추, 오이 이런 잡다한 것들을 길러냈고, 가끔 바다에 나가 울퉁불퉁한 바위 틈에서 거북이손이란 요상한 오징어 맛 나는 것을 양동이 그득하게 캐어왔다. 이 거북이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솥에 푹 삶고 껍질을 찢어 고 안에 있는 짭잘한 살을 악 물어 빼내어 먹으면 뜨듯한 국물이 손가락의 피부결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허 씨 할아버지는 이렇게 잔뜩 잡아온 거북이손을 마을 사람들에게 종종 나누어주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 씨 할아버지는 혼자 살고 있어 그 많은 양의 거북이손을 다 해치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허 씨 할아버지로부터 거북이손을 받으러 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할아버지는 온데 간데 없고대신 돌계단에 한 어여쁜 단발머리 애가 앉아 있었다. 

"네가 그 거북손 받으러 온 아이니?"

아이의 이름은 은결이었다. 허 씨 할아버지 손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귀 모양이 겹쳐보였다.

거북이손을 모조리 삶아버렸는데 집까지 가져가면 식을지 모르고 또 삶고 난 뒤에 곧장 먹어야 맛이 있으니 와서 먹고 가라 했다. 얼결에 난 허 씨 할아버지 댁 계단에서 거북이손을 까먹고 있었다. 거북이손 껍질의 결을 계속해서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살결을 감추고 있는 거추장스럽고 딱딱한 결이었다. 은결은 누가 보아도 서울내기였다. 시골 살이에 궁금한 것들을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어째서인지 쉽사리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은결이 틀린 방법으로 거북이손을 먹고 있다는 것도 거슬렸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도, 숱 많은 풍성한 머리카락이 내 머리카락과 스칠 때 가슴이 철렁한 것도 무엇 하나 마음 편한 것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거북이손을 뜯을 뿐이었다. 

"잘 놀고들 있나?"

허 씨 할아버지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대파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이만 가야겠다고 말했다. 다음에 보자, 은결아 중얼거리며 인사하고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가능한 한 빠르게 발을 놀렸다. 집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해안도로에서 풀썩 쓰러졌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과 등의 살결이 만나 스쳤다. 아팠다.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멀리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잠깐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때였다. 자전거의 체인이 돌아가면서 도로롱 도로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니?"

은결이었다. 노을이 지는 바다 곁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왔는데 왜 내가 여기에 누워있느냐고 묻는다.

"몰라. 아파."

은결이 손을 내밀어 주어서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은결의 손은 하얗고 보드라웠다. 은결은 자전거를 세우고 해안도로를 달리자고 했다. 은결은 무작정 뛰기를 좋아했다. 효율적으로 달리는 데에 필요한 절차나 준비운동 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했다. 함께 걷다가 말을 잠깐 붙여보려고 하면 벌써 저만치 멀리 가버린 후였다. 은결은 느릿느릿한 나와 걸음을 맞추기 위해 저 멀리에서 멈추었다. 은결은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물결과 손바닥이 만날 것 같았다. 물결이 살결과 맞닿고, 은결은 붉은 바다를 눈으로 어루만지려고 했다. 노을빛이 은결의 머릿결에 녹아들어 빛나는 갈색으로 흔들렸다. 나는 바다의 물결을 눈에 담는 은결을 눈에 담았다.

은결은 해마다 우리 마을에 놀러왔고, 우리는 항상 함께 놀았다. 은결을 향한 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것은 우정이었고 막연한 존경과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바람결이 살포시 살결에 내려앉아 어린 날의 기억을 두드릴 때, 나는 우리가 공유했던 수많은 결들을 떠올린다. 거북손 껍질의 결, 그 속의 부드러운 결, 은결의 빛나는 머릿결, 그 보드라웠던 손의 살결, 바다의 물결과 바람결까지도. 


■고등학교부 운문 최우수
'다리 밑 소년'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학년 3반 박민정

고운 결의 돌 하나를 힘껏 내던지는
늦은 저녁의 쓸쓸한 다리 밑

포물선을 그리던 고운 조약돌은
티끌 하나 없는 강물 위로 쓸쓸히 내려앉고

분홍빛 강물은 잔잔히 일렁이며
쓸쓸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려는 찰나

말없는 강물은 잔뜩 흐트러진 채
고운 돌을 쓸쓸히 집어삼킨다

투박한 손으로 자리를 털며 일어난 소년은
발길에 채이는 돌 하나를 또 다시 내던지고

소년의 낡은 분홍빛 셔츠에도
붉은 물을 들이는 조각난 강물

어느새 새빨개진 강물은 두툼하고 결이 거친 돌을
사정없이 집어삼킬 뿐 아무 말이 없다

무채색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저녁달은
어쩐지 다리 밑만은 환하게 비추지를 못하였고

오직 결 좋은 조약돌들만이 희미한 달빛을 
어느새 잔잔해진 강물에 비추어 주었다

저벅저벅 멀어져가는 소년의 쓸쓸한 뒷모습이 
머무르던 작고 좁은 초라한 자리에는

여전히, 여전히 가지런히 남아있는
고운 빛깔 꽃모자 


■중학교부 산문 최우수
'문학의 식사, 문학의 그릇' 귀일중학교 3학년 4반 김수은

허기를 달랠 주는 것이 밥의 일이라면, 언 몸을 녹여주는 것이 국의 일이라면, 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반찬의 일이라면 나는 마음을 감싸주는 것은 그릇의 일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식사를 할 떄마다 한다는 이 생각은 사실은 잊을 만하면 머릿속의 샘 위로 둥둥 떠오른다. 밥을 먹는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에서 꽤나 엉뚱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생각은 오히려 식사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다. 나의 식사 시간은 네 번이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독서.

독서는 또 하나의 식사이다. 색색의 알록달록한 표지들은 현실에 고드름처럼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기 시작한다. 책을 펴자마자 보이는 실로 얼기설기한 하이얀 종이들의 환영 인사는 나의 앎에 대한 허기를 달래 주는 덴 직격이다. 부둣가의 윤슬처럼 옅으게도 반짝이는 단어들은 하나 둘 씩 모여들어 반찬이 된다. 그렇게 밥이라고 불리우는 종이들이 김밥처럼 반찬들의 밑에 깔리겠지.

그렇게 갖은 반찬들을 맛보다 나는 시나브로 식사의 즐거움에 잠식되고 만다. 무언가를 알아감에 대한 식사. 책은 또 하나의 그릇이다. 밥과 국과 반찬을 모두 한 곳에 담아 정갈하게 정리하여 담아내는 가장 가치 있는 그릇이다. 소풍의 계절 들 뜬 마음으로 하늘 아래에서 도시락을 꺼내면 분명 한 시간 전엔 봄날 밤에 휘날리는 벚꽃처럼 김 위로 흩어지는 밥알들이 반찬들과 함께 예쁘게도 담겨져 있다. 금세 기분이 좋아져 선선한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봄날의 식사, 그러니까 봄날의 독서를 시작한다.

자그마한 집 먼지들이 하염없이 달라붙어 비틀비틀 위태로이 돌아가는 선풍기가 있는 마루에서는 매미 소리가 온 집을 아울러 한 편의 뮤지컬을 해낸다. 바다 냄새가 코를 시큰하게 아려오는 이 지독한 여름날엔 시원한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냉면 육수에 거뭇거뭇한 면과 고명들이 서로 뒤엉킨다. 여차하면 여름 그 자체라고 비유할 수 있는 이 음식을 한 데 모아주는 것은 은색의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부들부들한 바람이 새어 나오는 에어컨 대신 시원한 이 식사를 끝마치면 더운 바람들이 춤을 추는 이 여름날에도 지식에 대한 갈망을 채우는데 성공한다.

밟으면 버석버석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낙엽들의 향연에 합류하면 가장 공활한 하늘이 눈 앞에 제 맑음을 뽐낸다. 애초부터 독서의 계절이라고 할 만큼 여럿 애매하고도 여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청춘의 감성에 사무치는 가을은 의외로 넘쳐나는 식사 시간의 계절이다. 자신이 어째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이 계절에겐 식사 시간이 지극히 많이 필요하다. 딱히 특정한 음식을 지정해주기보단 여러 음식을 맛보고 여러 그릇들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외로움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날에는 사랑 이야기처럼 달콤한 주전부리들이 좋을 거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들의 귀갓길에 다다르면 시린 공기가 코끝까지 훅 밀려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모든 나약한 것들이 추락하는 계절, 밖에 나가 눈을 맞는 것도 좋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방구석에 자리 잡아 뱀의 겨울잠처럼 길고 긴 식사를 하는 것도 지친 심신을 안정시키고 위로해 주는 덴 커다란 도움이 된다. 너무나 광활하고 너무나 길어 아예 몇 권짜리 묶음으로 엮어낸 환상 문학 같이 길다란 식사는 추운 겨울 날 나의 상상력을 더욱 더 뜨겁게 만들어 준다. 사계절, 그들만의 네 가지 식사법, 그들만의 그릇은 일 년을 지식의 욕구, 그러니까 '식욕'에서 벗어나게 해 줄 만큼 그 분량이 많고 환상적이다. 봄날엔 도시락 안에 김밥처럼 시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는 시집이, 여름날엔 냉면처럼 시원하고 가슴 벅찬 젊음의 이야기들이 더워 녹진해진 마음을 부채질해주는 성장 소설이, 가을날엔 접시 안에 달콤한 조각 케이크처럼 설레이고 마음을 녹이는 청춘의 이야기들이 연거푸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사랑이야기가, 겨울날엔 밤을 새워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푹 빠져들게 하는 환상 소설이 가장 맛있고 기쁜 식사 시간의 그릇이 된다.

문학의 그릇은 제가 직접 밥과 국과 반찬을 입맛대로 담아낼 수 있다. 그것이 이 견고한 그릇의 무한함이자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그릇을 만드는 전문가가 되고, 우리가 그릇에 담을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어 남들에게 든든한 식사 시간을 선사한다면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얼굴에 쨍한 미소가 가득 차게 될 일인가. 그릇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음식들은 무한하다. 손맛이 들어간 그릇은 더더욱일 것이다.

알아감에 대한 욕구를 달래주는 것이 종잇장의 일이라면, 현실에 꽁꽁 얼어버린 감정을 녹여주는 것이 표지의 일이라면, 뇌 속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단어들의 일이라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나의 여러 가지 감정들로 얽힌 마음들을 감싸주는 책에 집어 넣을 것이다. 나의 식사 시간은 네 번.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독서. 그 중에서도 독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들로 가득 찬 최고의 밥상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책에 담긴 것들을 맛보는 덴 그 어떠한 제약도 날 막지 않음을. 알아감에 대한 다이어트는 필요 없음을. 


■중학교부 운문 최우수
'그릇 속에 쌓이는 것은' 한라중학교 3학년 4반 허혜원

내 왼쪽 가슴 속엔
한 줌의 물을 찰랑이며
머금고 있는 흰 그릇이 있어

총탄 같은 말들이 잦바듬한
궤도를 그리고 심장께를 후비면
그릇의 균열을 따라 뚜욱 뚝
투명한 피처럼 끈질기게 흘러내린다

아물 줄 모르는 환부를
낫게 해줄 무언가 절실해
어느덧 난 파도 속 뱃사공의 노랫말을
몇 줄 시구를 써내려간다

아름다운 말들은
목울대와 입 안을 활공하다
그릇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마침내

흰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들게 된
나는 가슴에 가시가 돋쳐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하얀 연고 같은 시를 적어내리리라


■한뫼백일장 수상자 명단

◇운문 부문 ▲중학교부 △최우수=허혜원(한라중 3) △우수=홍린(한라중 2) 고민지(오름중 3) △가작=고민경(한라중 2) 박성현(제주동여중 3) 권효림(노형중 3) △장려=김나현(한림여중 2) 이태헌(서귀포중 2) 홍혁빈(한림중 3) 김가연(신성여중 1) 정희수(함덕중 3) 강소이(제주사대부중 1) ▲고등학교부 △최우수=박민정(서귀포여고 2) △우수=오영아(영주고 1) 강수완(제주여상 3) △가작=우민재(오현고 3) 김나현(제주외고 2) 이예림(제주중앙여고 2) △장려=고이현(한림고 1) 윤소리(제주여고 1) 고준호(제주제일고 3) 

◇산문 부문 ▲중학교부 △최우수=김수은(귀일중 3) △우수=현주연(노형중 3) 김수민(노형중 3) △가작=현유정(제주동여중 2) 조한별(제주동여중 2) 김해리(한라중 2) △장려=홍주영(제주여중 1) 박윤슬(중문중 2) 양성현(남주중 2) 김가인(아라중 1) 정지윤(제주서중 2) 윤소희(애월중 1) 이하민(탐라중 1) 박지연(저청중 2) ▲고등학교부 △최우수=김현주(서귀포여고 1) △우수=김세이(서귀포여고 1) 김수빈(제주여상 1) 가작=정재연(제주여고 1) 김영서(제주외고 2) 최윤서(제주외고 2) △장려=정주은(제주중앙여고 2) 오정환(영주고 2) 송지웅(제주사대부고 1) 홍영기(대기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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