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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의 고향' 제주…인생의 대소사 함께 한 귀한 작물커버스토리 / 메밀
김정희 기자
입력 2019-06-13 (목) 12:18:04 | 승인 2019-06-13 (목) 18:07:50 | 최종수정 2019-06-16 (목) 11:21:05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 일대에서 열린 '2019 제주메밀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꽃이 만개한 메밀밭 사이에서 낭만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재배면적·생산량 전국 최고
이모작 가능해 구황 작물로
건강식품에 해열·해독 등 효능
음식 비롯해 다양한 문화 전해

제주의 농경신 자청비는 옥황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옥황의 천자에게 상으로 오곡의 씨앗을 받아 7월에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 자청비가 문도령과 함께 씨를 뿌리고 보니 한 종류의 씨가 모자랐다. 자청비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씨를 받아와 심으니 다른 곡식보다 파종이 한달이 늦었으나 같이 수확하게 됐다. 그 씨가 바로 메밀이다. 신화에도 등장하는 메밀은 제주사람들의 삶에 있어 그만큼 오래되고 중요한 작물이다.

메밀하면 으레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더불어 강원도 봉평을 떠올린다. 하지만 봉평에서 유통되는 메밀은 제주에서 생산된 상당수가 강원도로 건너가 가공된 것이다. 2016년 통계청 농작물 생산조사를 보면 전국 메밀 재배면적의 3177㏊ 중 제주가 1382㏊를 차지한다. 이는 전국 메밀 생산지의 43%에 해당되며 재배면적과 더불어 생산량도 국내 최대 규모다.

사실 제주는 메밀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제주의 땅은 검고 푸석한 화산회토가 약 80%를 차지한다. 작물을 심고 기르기가 까다로운 화산회토를 제주사람들은 ‘뜬땅’이라고 불렀는데, 워낙 토양이 거칠고 메마른 까닭에 논농사는커녕 밭작물을 키우기도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에 비해 생육 기간이 짧고 이모작이 가능해 구황 작물로 효자 노릇을 했다. 병충해에 강하며 잡초를 매지 않아도 되고 심기만 하면 곁가지가 쑥쑥 자라 풍년을 안겨주었다.

제주에서는 메밀을 1년에 두 번 수확한다. 4월에 뿌려 6월에 걷고 8월에 뿌려 11월에 걷는다. 그래서 제주의 ‘메밀꽃 필 무렵’은 5월과 10월로 이 즈음 중산간 지역 곳곳에는 하늘에서 팝콘이 떨어진 듯한 꿈결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한방에서는 오래전부터 메밀을 약재로 썼는데 「동의보감」에는 ‘집에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내려간다. 메밀 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귀와 눈이 밝아진다’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의서 「본초강목」에는 ‘메밀은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없애준다’고 돼 있다. 조선시대 왕들은 해열제로 메밀차를 음용하며 감기를 다스리곤 했다. 예부터 베갯속에 메밀껍질을 넣었는데 메밀의 찬 성질을 이용해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예방했다. 또 메밀베개는 건망증과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메밀은 트레오닌, 아미노산, 비타민, 리산 등 다른 곡류보다 더 많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메밀이 함유한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손상된 간세포의 재생을 촉진하고 간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며 콜린(비타민Bp) 성분은 알코올 해독에 도움을 준다. 과음한 다음날 메밀차를 한잔 마셔보면 자극적인 안주로 적잖이 부은 몸을 가볍게 해주고 간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오늘날에는 메밀에 함유된 루틴 성분을 고혈압과 같은 혈관질환 치료제에 사용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메밀을 글루텐 함유량이 없는 웰빙 식재료로 선호한다.

메밀은 버릴 것이 없었다. 여름 작물이 홍수나 가뭄 피해로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메밀을 파종했는데 일조량이 짧고 가을이 빨리 오는 중산간에서 특히 많이 재배했다. 어릴 때는 나물로, 자라서 꽃이 피고 나면 뿌리만 놔두고 나머지는 썰어 솥에 오래 끓여 죽을 만들어 먹었다. 가축의 사료가 되기도 하고 심한 흉년이 들 때는 메밀대를 삶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메밀가루는 뜨거운 물에 타면 곧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마소를 돌보러 나갈 때 비상 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자청비 신화를 비롯해 제주에는 메밀에 대한 오랜 이야기와 음식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가 전해오고 있다. 고려 삼별초 당시 메밀과 무를 함께 먹게 된 유래담, 출산한 여성의 보양식이자 제주식 수제비인 메밀조배기를 비롯해 범벅과 칼국수 등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음식과 조리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의 메밀 음식은 무궁무진하다. 메밀은 굽고 삶고 찌는 등 다채로운 조리법에 접목시킬 수 있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국수, 밥 등은 물론 짝지어 먹는 재료에 따라서도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조, 보리조차 귀했던 제주에서 메밀은 곤궁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과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 한 제주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다. 김정희 기자

참고자료=제주메밀 레시피북(제주메밀육성사업단)

김정희 기자  jhkim@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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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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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사랑 2019-06-17 09:43:17

    제주 관광객이 음식가격이 비싸다고 하는데, 전국 최고면적의 메밀을 이용한 저렴한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 공급하는 것이 좋겠네요. 도청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가 필요하겠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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