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YWCA회장·논설위원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법을 찾을 때, 종종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렉산더 대왕에 얽힌 이야기가 거론된다. 기원전8세기, 지금의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프리기아'의 고르디우스 왕은 자신을 왕좌에 앉혀 준 소달구지를 복잡한 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어서 신에게 바쳤다. 그리고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남겼다.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했으나 매듭의 얽힘이 너무 복잡하여 모두 실패한다. 

이후 수백 년이 흘러 프리지아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고자 신전을 찾아갔다. 수없이 시도했으나 매듭을 풀 수 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단호하게 칼을 내리쳐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잘라 버렸다. 후에 그는 아시아를 정복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02년부터 18년째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미만) 상태다.  1.1~1.3명 사이에서 증감을 보이던 출산율은 2015년부터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2018년에는 0.98명으로 하락했다. 조사 가능한 나라 중 꼴찌,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는 세계 최초라 한다. 

수도 없이 많은 저출산대책이 쏟아져 나왔고 보육과 돌봄, 교육, 일자리, 주거 등의 문제해결을 위해 무려 153조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도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저 출산현상은 점점 더 꼬여갈 뿐이다.

지난해 문재인정부가 첫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며 저 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호하게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이 떠올랐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구호일 뿐. 단단한 매듭을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조차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가 생각하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니었다. 

저 출산을 문제로 인식하던 시점부터 줄곧 출산장려정책에 살아 움직이는 오래된 구호가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수많은 수요가 창출되고 일자리도 생긴다. 경제생활을 시작하면 납세자다. 반면 저 출산이 지속되면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생산성이 저하 되어 국가의 위기와 재앙을 불러온다.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를 담고 있는 출산정책의 패러다임이다.

아이를 생산성이나 노동력으로 보는 패러다임으로는 단단히 꼬여있는 저 출산의 매듭을 풀 수 없다. 문재인정부가 패러다임을 바꿀 의지가 있다면 이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와중에 인구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할 변동이 감지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 곁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변화의 속도가 몹시 빠르다는 점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대량실직 사태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는 벌써 나왔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도 '15년 내에 지금 일자리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말 그대로 잉여이지 않은가.

아직은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이지 않고 그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출산장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여서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저 출산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지, 아니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저 출산 대책을 과감히 잘라내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인구정책을 펼지에 대해 큰 틀에서 검토를 하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1984년의 일이다. 그러나 2005년까지 저출산 상태였음에도 이를 위기로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의 저 출산을 그 때 막았다면 호미면 충분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 수없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구정책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지금이 출산정책을 돌아봐야 할 골든타임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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