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의하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시달한 초·중·고등학생에 대한 체벌 등에 관한 지침에 체벌은 초·중학교는 지름 1Cm 길이 50Cm의 나무, 고등학교는 지름 1.5Cm 길이 60Cm 이내의 나무로 여학생은 허벅지를 남학생은 엉덩이를, 초등학생은 5회 이내 중·고등학생은 10회 이내로 때리게 돼 있다.

 체벌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인간관·교육관에 따라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체벌도 일종의 폭력이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체벌은 "사랑의 매"로서 교육의 한 방편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전자는 인권사상과 휴머니즘적 교육사상의 영향이며 후자는 고래의 전통적 교육을 인습적으로 답습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체벌을 가하는 인체의 부위가 명시됐는데 이것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주목된다.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 계통 나라에서는 엉덩이가 주된 체벌부위다. 이에 비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라틴 계통 국가들에서는 귀나 코를 잡아 끌어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등을 때리고 인도의 힌두 문화권에서는 머릿속에 악마가 들었다하여 이마를 튕긴다. 일본에서는 주로 손바닥을 펴게 하여 때리는데 우리 한국의 체벌 신체부위는 종아리다.

 한국의 경우는 조선시대의 서당에서 달초(撻楚:종아리칠 달·회초리 초) 또는 초달이라고 하는 종아리를 치는 회초리의 매가 대표적인 체벌로 행해졌으며 그 뒤로도 가정·학교에서 교육의 일부로서 존재해 왔다. 체벌이 교육상 비중이 얼마나 컸는가는 가르친다는 것을 교편을 든다하고, 가르쳐 인도한다는 것을 편달한다는데 편(鞭)도 달(撻)도 회초리 곧 매를 말하고 있다.

 옛날 서당에 아이 맡긴 부모가 싸리나무로 회초리 꺾어 훈장 찾아뵙는 일도 바로 좋게 길러달라고 매질을 청하러 가는 뜻임을 미루어도 체벌의 교육적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선비 사회에서 좋은 문장이 나오거나 과거시험에서 명문장이 나오면 이를 칭찬하는 말로 오십절초(五十折楚)의 문장이니 구십절초(九十折楚)의 문장이니 했는데 바로 쉰개 아흔개의 회초리를 꺾이도록 맞아가며 익힌 문장이란 뜻이다. 인간의 재능의 달성과 교육적 체벌과를 이토록 연관시킨 전통 교육이었다.

 옛날 한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하면서 동구 밖 싸리나무(회초리를 만들었던 나무)에 큰절을 하였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있는 에피소드의 한 토막이다.

 이러한 고사에 비추어 본다면, 회초리를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대의 매보다 한마디의 말"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존재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징계권까지 일일이 정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회의를 갖게 한다. 이 배경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되면 회초리를 권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하늘 무너질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체벌여부는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최소한의 재량권으로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이마저 위축시키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교육에 관한 한 아무도 교사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지원하고 조장하는 것이 교육행정의 몫이다. 교사는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교육방법을 터득하고 있으며 가장 진실하고 겸손하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사들이 긍지와 소망을 갖고 교직에 안주하며 구김 없는 신념으로 교단에 설 때 학생들은 이지러짐 없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으며 여기에 회초리는 필요 없게 된다. 정성으로 가르치는 스승에 겸손하게 배우는 제자, 얼마나 아름다운 사제관계인가.

 교육내실화의 비결은 "사랑의 회초리"니 "성과급 차등지급" 등의 기발한(?) 착상보다 실질적인 "교권신장 촉매", "복지제도 확대", "자율성 부여", "근무환경 개선" 등으로 교사의 모랄 업을 도모하는 일 곧 학생교육에 열의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줌으로써 가능할 것이라는 관견(管見)이다.<신용준·전 제주한라대학장>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