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지난 2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은 미국의 책임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조태열 대사는 사전 준비, 발표자 구성, 토론 내용, 참석자 구성 등이 국제행사에 손색이 없었다고 자평했다.

심포지엄 내용은 많은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 중 보도 안된 몇 가지 뒷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심포지엄 직후 유엔대표부에서 만찬 리셉션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축사를 했던 두 분을 소개하겠다. 91세의 노장 찰스 랭글은 1971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46년 동안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거물이다. 흑인으로 뉴욕주에서 23번(2년마다 선거)이나 당선된 전설적인 인물인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문제에 애정이 깊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토마스 번 회장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수석부사장 출신이다.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차 뉴욕에 방문했을 때, 별도의 대통령 연설회를 주최할 정도로 한미외교의 가교역할을 해왔다. 어쩌면 4·3문제와는 거리감이 있을 법한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든든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거사문제도 진솔하게 풀어야한다"고 발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첫 난관은 유엔 회의장 임대였다. 4·3같은 특정한 나라의 과거사문제를 유엔에서 토론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외교부가 동의하고 주최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직접 만났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출신 강창일 의원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가 주최하는 것으로 어렵게 가닥을 잡았다.

130석의 유엔 회의장을 대여 받으면서 뉴욕에서 과연 이 인원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행사 3일전 뉴욕대표부와 한국쪽에서 집계한 결과, 신청자가 185명에 이르렀다. 유엔 쪽에선 안전문제를 중시해서 과도한 인원의 출입증 발급은 안된다면서 강경했다. 그래서 150명 수준으로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워싱톤 등 외곽에서 오시겠다는 분들을 중심으로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로 곤혹을 치를 줄은 예상 못했던 일이다. 

행사 당일 우리 쪽에서 준비했던 출입증 이외에 유엔본부를 늘상 출입하는 각국 외교관과 유엔 관계자들도 20~30명이 왔다. 우리 측 보도자료에 참석자 인원을 '150여명'으로 표시했지만, 현장을 직접 취재한 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이 "20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는 보도내용이 더 적합한 것 같다.

그럼에도 애석한 일은 유엔본부 입구까지 왔다가 출입증이 없어서 되돌아간 분들이다. 성공회 트리니티성당 제임스 멜키오레 신부도 그중의 한 분이었다. 그 분은 꼭 전해달라면서 명함을 놓고 갔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 맨해튼 남쪽 월스트리트 한복판에 있는 트리니티성당을 찾아가서 멜키오레 신부를 만났다. 그 분은 반갑게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트리니티성당은 1697년에 세워진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 여기서도 4·3을 소재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행사 이틀 만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변호했다는 로널드 그린버그 원로 변호사, 코넬대학교 스테픈 가비 법과 교수 등이 4·3연구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더욱이 반가운 일은 재미뉴욕제주도민회 이한진 회장 중심으로 가까운 시일 안에 재미4·3관련단체를 결성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주 화북 출신인 이 회장은 4·3당시 어머니와 12살 난 누님, 두 형님 등 일가족 4명을 잃은 한 많은 유족이었다.

심포지엄 좌장을 맡았던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는 공개적으로 "4·3평화 화해운동을 글로벌 연대를 통해 노벨평화상 추천운동으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박 교수에게 "너무 나가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아니다"라는 것이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이기도한 그는 "제주4·3평화운동은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화해운동을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이미 노벨상 추천권이 있는 김대중도서관 측에서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실로 꿈같은 일들이 하나하나 전개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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