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육성보전위원 / 시인 / 논설위원

이제 칠순이 넘었다. 살 만큼 살고 있으니 왜 사는지도 제대로 알고 싶다. 우선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 것이 궁금하고 원하지 않는데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피동이 원통하다.

그동안 맨손으로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기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서로의 옷깃이 스치게 된 상황을 역순으로 따져보면 만나는 지점이 형성된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문제는 태어나기 이전을 전혀 모른다는 거다. 전생을 알거나 후생을 안다는 것 자체가 우주를 파괴하는 혼동인가.

목숨은 왜 하나뿐인가. 하나쯤은 여분이 있어야 시행착오도 여유로울 것인즉 달랑 하나뿐이라서 절대적으로 소중하다. 부와 권세를 물려받으려면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절반의 행운이다. 목숨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엄연한 피동, 결국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결핍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 나온 이유도 모르면서 운명이나 숙명을 따지거나 진선미와 지정의를 설파하고 정반합에 인문학을 들먹인다 한들 머리가 잘린 문어의 발버둥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삶을 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고 소망을 이루거나 즐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박으로 돈을 날린 경우는 액수만큼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짓이다. 만원이 오고가는 경우와 수십억이 오고가는 경우가 목숨에 대한 전율의 강도가 다르듯이 '러시안 룰렛'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박은 스릴이 넘친다.

목숨이 하나뿐인 상황이 모든 생물에게 공통한다는 사실 또한 희한하다.
다람쥐가 필요 이상으로 도토리를 곳곳에 묻는 것도, 박쥐가 외계인 좀비처럼 생긴 이유도 그래야만 하는 생존의 법칙이 있겠다. 사람들의 생김도 제각각인 것은 저마다 목숨을 부지하는 노하우가 진화된 형태다.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는데 화장실 구석에선 모기가 어마어마한 침묵으로 우화(羽化)의 순간을 마치고 있다.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쳐서 죽였다. 날개에 묻은 점액질만 마르면 우렁차게 날아서 짝을 만나야 할 모기의 목숨을 단숨에 없애고 만 거다.

모기가 지구에서 나타난 것은 약 1억7000만 년 전인 쥐라기시대인데 공룡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살았지만, 공룡들이 전멸해서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아먹으며 끈질기게 살고 있다.

모기의 일생은 약 한 달 정도, 제대로 살기 위하여 7개의 입을 가진 진화 생명체다. 피부에 구멍을 내고, 혈관을 뚫고, 피가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응고 체액을 주입하고. 빨고, 마취제를 넣고 두꺼운 가죽이나 청바지를 뚫고 피를 빨 수 있는 톱날 침도 있다는 거다.

하루살이는 애벌레로 약 1년 동안 사는데 인간이 태내 양수에서 사는 형태와 비슷하다. 수명이 짧은 것은 1시간에서 2∼3일, 길어서 3주일 정도 살다가 죽어도 아무 말이 없다. 더하여 바퀴벌레는 3억 2000만년을 살면서도 별로 진화하지 않아도 잘 살고 있어 후대에 생겨난 인간이 약을 개발해 박멸하겠다고 하면 웃긴다고 할지 모르겠다. 

어찌하든 공간은 체(體)요, 시간은 용(用)이며 모든 목숨은 하나다. 어떤 목숨도 죽어 없어지는데 사후세계가 따로 있다는 종교는 믿음에서 구한 생명의 부활처란 말인가. 어쩌면 모든 만남은 운명일 수가 있다.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조차 모르다 보니 전생이나 후생에 환생하여 부부로 만났다고 한들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위함인가.

횡설수설로 어설프게 마감하지만, 지구에서 생겨난 어마어마한 목숨들은 근원도 모른 채 운명적으로 태어나 부지런히 살다가 어쩔 수 없어 죽는다는 사실. 돈을 비롯해서 목숨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가 건강과 직결되는 것도 보다 즐겁고 보람차게 살려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위한 운명의 진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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