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일제 강점기 성산리 일본군 위안소 공개 기자회견
오시종 할아버지 "자폭용 부대 요카렌 생도 이용…한 곳에 여자 5~7명 상주"

일제시대 말기 제주도에 일본군 위안소가 존재했다는 증언이 처음으로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4월 일본 해군이 제주도 성산리에 두 곳의 위안소를 설치·운용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 위안소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소장 조성윤)와 서귀포시 성산리는 8일 서귀포시 성산리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평양 전쟁 말기 요카렌의 제주도 주둔과 위안소-성산 지역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봄부터 제주도가 결호 작전 지역에 편입되면서 성산 지역 역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화기와 병력도 집중됐다. 그 과정에서 자폭용 병기인 신요와 제45신요대 소속의 요카렌 생도들이 배치됐고 위안소가 설치·운용됐다.

조성윤 소장은 "일본 해군은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신요대 3개 부대를 제주도에 전략 배치시켰다"며 "모두 진해경비부 소속으로 제45신요대는 성산일출봉, 제119신요대는 서귀포 삼매봉, 제120신요대가 고산 수월봉 해안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이어 "1945년 4월 성산 지역에 새롭게 배치된 제45신요대의 병사들은 모두 요카렌 출신으로 16세부터 20세 전후의 청년들로 구성됐다"며 "그들은 매일 자폭용 병기인 신요 보트에 올라 일출봉 일대 해안에서 훈련을 받으며 최전선에서 미군 함정에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폭탄을 실은 보트를 타고 미국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요카렌들은 일본군 중 특별히 대우를 받는 존재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오시종 할아버지(90)는 "내가 살던 집에서 30m도 떨어지지 않은 'ㄱ'자로 된 일반 민가가 있었는데 이곳이 위안소로 운영됐고 다른 한 곳은 나카무라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여관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위안소에는 한 곳당 5~7명의 여성이 있었고 나이는 대부분 20대였으며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단추가 7개 달린 군복을 입고 위안소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요카렌의 모습이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이 기억되고 있다"고 회상했다. 

조성윤 소장은 "전쟁 말기 성산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요카렌 관련 사료 발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일본 본토와 중국, 대만 등 신요대가 어떻게 주둔했었고, 위안소가 어떤 양상으로 존재헀는지 비교 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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