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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계절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9-07-09 (화) 13:25:18 | 승인 2019-07-09 (화) 13:26:48 | 최종수정 2019-11-05 (화) 15:32:36

옛 것들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드는가 싶다가도 어쩌면 잃어버린 나의 반쪽 같은 마음에 애절해진다. 최근에는 토란잎이 그렇게 보고 싶었다. 토란잎이 뭐라고 이런 감정일까 한참을 헤아려보았다. 아련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기억은 영천동 양마단지 언덕배기로 이미 달려가 있다. 45년이나 지난 흑백풍경이다. 코흘리개 행숙이가 보현이네 마당 담벼락에 붙어 말을 못하고 있다. '보현아 놀자'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에서 말을 떼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마당 안에서 누가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니 얼른 토란 잎 안으로 숨는다. 

여름에는 한두 평 여름밭을 키운다재는 것 없이 막행막식하고 살고 싶을 때가 있지그때 내 마음에도 한두 평 여름밭이 생겨난다그냥 둬보자는 것이다고구마순은 내 발목보다는 조금 높고토란은 넓은 그늘 아래 호색한처럼 그 짓으로 알을 만들고참외는 장대비를 콱 물어 삼켜 아랫배가 곪고억센 풀잎들은 숫돌에 막 갈아 나온 낫처럼 스윽스윽 허공의 네 팔다리를 끊어놓고흙에 사는 벌레들은 구멍에서 굼실거리고저들마다 일꾼이고 저들마다 살림이고 저들마다 막행막식하는 그런 밭날이 무명빛으로 잘 들어 내 귀는 밝고 눈은 맑다그러니 그냥 더 둬보자는 것이다 (문태준, 「여름밭」전문)

토란잎은 행숙이의 얼굴을 덮고도 남는다. 토란잎에 동그랗게 모여 있던 이슬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어려서는 이슬방울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애석할 수가 없었다. 개미떼가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처럼 물방울에게서도 그런 이별의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이별은 내 삶의 단골 메뉴였으나 여전히 아리다. 양마단지도 내게는 그런 이별 중에 하나다. 

양마단지 우리 집 앞에는 내가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내가 터졌다. 장마철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터지면 너무 무서웠다. 물이 무섭다는 건 그 시절에 알았다. 내를 건너다 죽은 아이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내가 터지는 날에는 바깥출입을 삼가야했다. 요상하게도 하지 말라는 건 하고 싶기도 하다. 무서운 줄 알면서도 내가 터진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보현이와  나는 쑥대나무에 꼭 붙어 서서 내가 터지는 모습을 한참 쳐다본 적이 있다. 한발 짝도 움직거리지 않고 누런 물이 콸콸 바위를 지나 오래 된 나무의 밑동을 넘어뜨리는 걸 지켜보았다. 누런 물들이 언덕배기에서 몰려오는데 우지끈 나무가 무너지는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만지면 흩어지고 마는 물이 어떻게 저렇게 한꺼번에 모여들어 나무들을 공격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물이 모이면 무섭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앵두나무 아래 수국, 봉숭아꽃, 콩, 토란, 고추, 깨 등이 다 모였다. 화분들도 가지각색이다. 마당이 좁으니 급한 대로 앵두나무네 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셈이다. 토란잎은 아직 아기나무 수준이다. 그 중에 콩잎이 단연 성장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자고나면 두 뼘 씩 자라나 있는 게 콩잎이다. 이맘때 콩잎은 쌈 싸먹기에 제격이다. 멸젖이나 자리젖에 싸먹으면 그만이다. 장마 지나면 콩잎은 늙은 손이 된다. 할머니 말씀이 기억난다. "여린 잎은 네 손이고, 거친 잎은 나 같은 손."이라고 하셨던. 문제는 깨꽃이다. 연분홍 빛깔의 여리여리한 깨꽃은 바람이 운명을 좌우한다. 장마가 들더라도 비는 좀 살살 내려줘야 하고 태풍은 차마 입에 담기 무섭다. 장마라는데 요 며칠이 고비다. 토란잎은 비가 좀 내려줘야 제멋인데 말이다. 이렇게 다른 것들이 한 마당 안에 있으니 바람도 장단을 맞추기가 참 어렵겠다. 

작은 마당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당식구들을 보니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생각난다.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영화이다. 바닷가 마을 가마쿠리의 낡은 집에 
'사치'(아야세 하루카 분),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분)', '치카(카호 분)'라는 세 자매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는 15년 전 집을 떠난 후 다른 여자와 살다가 어느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세 자매의 마음은 황량한 사막의 모래바람 같았다. 아버지는 이복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 분)만을 두고 떠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말한다. 원작인 만화에서 "아버지의 외도로 버려진 세 자매가 이복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된다는 이야기의 설정에 끌렸다"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각기 다른 색깔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세 자매에게 이복동생 '스즈'는 손에 박힌 가시일 수 있다. 하지만 큰언니 '사치'는 '스즈'를 끌어안기로 한다. 그리고 말한다. "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라고.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둘째 '요시노'가 '스즈'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장면이다. 낯선 이를 한 식구로 받아들이는 일은 어쩌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는 일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당 한켠에 키 큰 모습으로 싱싱하게 흔들리는 봉숭아꽃을 보면서 올여름도 추억 하나 물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올해는 혼자만 봉숭아물 들이지 말고 누군가의 손톱을 봉숭아 꽃잎을 따서 친친 감아줘야겠다. 삶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여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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