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웅 자비정사·논설위원

길은 본시 열려있으며, 닫혀 있으면 길이 아니다. 길은 더불어 사용하는 공동의 길이 있고 생물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가는 길도 있다. 

예를 들면 깊은 골짜기에 있는 길은 등산객이 사용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들짐승이나 작은 곤충들도 사용한다. 이는 공동의 길이므로 어느 하나의 생명이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와는 달리 인간에게 인간의 길이 있다고 할 때의 길은 겉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요 마음의 길, 인간의 도리(道理)를 뜻하게 된다. 이에 맹자(孟子)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아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마음은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인간이 지니고 나온 마음이므로 이를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이 마음이 우리의 본래 마음임을 자각해서 이를 확충하여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 인간이 이 마음을 온전히 실현하는 이상적(理想的)인 인간이 되고 온 사회가 이 마음을 실현하면 가장 바람직한 사회가 된다고 맹자(孟子)는 확신했다. 비단 맹자만이 아니라 동서의 모든 성현은 한결같이 본래적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다. 불타(佛陀)는 "모든 중생이 다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하셨으며 우리의 참 생명은 천상(天上)이나 천하(天下)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니 이를 깨달아 참 생명답게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라고 설파하셨다.

또한 길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일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올바른 길이 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설정했다고 할지라도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성취된 바의 의미를 상실하며, 목적 자체가 왜곡되거나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한 올바른 길이 있으며 그 길을 아는 것이 지혜(知慧)이다. 그 지혜를 갖지 못한 이는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배우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제멋대로 해서는 목적 자체를 그르치기 쉽다.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으려 하는 이는 없고 스승의 교훈을 듣지 않으려 하는 이도 없건만 날로 어지러워지기만 하는 세상을 보면 듣고도 실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 듯 싶다. 올바로 살아간 이들의 지혜를 빌어 자신의 길을 설정하는데 의지하고 그 길을 근본으로 모든 일을 행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면서 실감하는 것이 있다. 이들이 온몸으로 배워졌을 때 철이 들게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순수함과 깨끗함이 힘인 것을 실감케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실수도 하고 허물도 범한다. 그러나 그가 순수하였으면 구제받는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였으면 용서 받지 못한다. 

순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영혼의 순수함과 인격의 순수함과 인간관계의 순수함이다. 두 번째로 여유로움이다. 한 인간이 성숙되어진 증거가 마음의 여유로움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고 그런 스트레스에서 오는 분쟁과 갈등이 심하다. 여유를 지닌 사람은 그런 현실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자신이 평화를 누리며 살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그 평화를 여유로움을 퍼뜨리게 된다. 끝으로 참는 능력이다. 한 사람의 성숙의 정도는 참는 능력에 비례한다. 잘 참는 사람이 성숙된 사람이다. 요즘 흔하게 사용하는 말로 잘 참는 사람이 EQ가 높은 사람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인내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성공에 이른다. 인내력이 없는 사람이 성공에 이른 예는 없다. 순수, 여유, 인내를 길러 행복한 나날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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