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제주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 겸임교수·논설위원

차기 유럽연합(EU) 최고 정치·경제 지도자에 사상 최초로 모두 여성이 내정됐다. EU 정치 분야 최고 지도자로 EU 행정부 수반격인 차기 EU 집행위원장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내정됐고, 경제 분야 최고 지도자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통화 정책을 총괄할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내정됐다. 

결국 EU 내 최고 요직에 여성 지도자가 내정돼 EU 최고 권력 기관에서 남성 지배 기조가 붕괴된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내정자는 의학박사 출신으로 독일 니더작센주 지방의원과 주정부 가족부 장관을 역임했고 메르켈 총리 내각에서 가족여성청년부 및 노동부 장관에 이어 독일 최초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다. 폰 데어 라이엔 내정자는 가족여성청년부 장관 시절 저출산 문제 해결에 주력했고 노동부 장관 시기 최저 임금제 및 대기업 이사회내 여성 비율 할당제를 추진했으며 국방부 장관 시절에는 유럽 방위 협력과 사병 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폰 데어 라이엔 내정자는 2021년 정계에서 은퇴하는 메르켈 총리에 이어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서 주목받고 있다. 향후 폰 데어 라이엔 내정자가 공식 취임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의 인준 투표에서 전체 의원 중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EU 정상회의가 유럽의회의 자율성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후보자를 추천한 것에 대해 유럽의회가 반발하면서 인준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으로 라가르드 ECB 총재 내정자는 반독점 및 노동 전문 변호사로서 미국 로펌인 베이커&맥켄지 최초 여성회장과 프랑스의 상무부 및 농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어 프랑스 최초의 여성 재무부 장관에 이어 여성 최초 IMF 총재로 재직 중이다. 라가르드 내정자는 전임 총재에 이어 통화 완화 정책을 계속 전개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라가르드 내정자는 통화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 경험이 전무한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번 EU 핵심 요직인 EU 집행위원장과 ECB 총재를 독일 및 프랑스 출신이 양분해 EU 양대 산맥인 양국이 권력관계의 균형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번 EU 핵심 요직 인선 과정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EU 최대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와 협의 속에 EU 패권국인 양국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프랑스 출신 라가르드 IMF 총재를 ECB 총재로 내정해 EU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타 EU 최고 권력 기관인 3개의 핵심 요직 인선 절차도 마무리돼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를,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에 호세프 보렐 전 스페인 외교부 장관이 내정됐고 9대 유럽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사회민주당 그룹 다비드 사솔리 의원이 선출됐다.

지난 5월 말 실시된 9대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서 유럽 통합을 강조하는 중도주의 정당이 과반을 차지했지만 그 세력이 약화된 반면, 반난민 및 반EU 기조의 극우·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하는 등 유럽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유럽의회 제2당인 사회민주당 그룹의 사솔리 의원이 유럽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것도 유럽의회 제1당인 유럽국민당이 중도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유럽의회 하반기 의장으로는 유럽국민당 대표이자 메르켈 총리가 후원하는 독일 출신 만프레드 베버 의원이 유력시된다. 이제 집행부 구성을 통해 새롭게 출발한 EU가 세력이 커진 극우·포퓰리즘 세력의 반난민 및 반EU 기조를 극복하고 강력한 EU의 통합과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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