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논설위원실장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는 '국민청원'에는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많은 현안이 올라온다. 최근에는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 금지된 가수 유승준씨에게 내려진 비자발급 거부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스티븐 유(유승준) 입국금지 다시 해주세요"라는 청원에 16일 오후 현재 20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이 지금 진행 중인 전체 청원 중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아동성폭행범을 감형한 서울고등법원 모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은 14일 24만298명을 끝으로 마감됐다. 또 베트남 이주 여성을 폭행한 전남 영암 남성을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2만여명, 태국 현지에서 멸종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채취, 국가적인 명예마저 실추시킨 SBS 예능 프로그램인 '정글의 법칙'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6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정치개혁, 외교·통일·국방, 일자리, 인권·성평등, 문화·예술·체육·언론에서부터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국민의 온갖 생생한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국민청원을 보면 정치권,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향한 분노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4월 22일 "자유한국당은 걸핏하면 장외투쟁과 정부의 입법 발목잡기를 하고 있고 대한민국 의원인지, 일본 의원인지 모를 나경원 원내대표도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며 청원한 '자유한국당 정당해산'에 사상 최다인 183만1900명의 국민이 동의했다. 이어 이틀 뒤 "국회에 묻습니다. 야당에 묻습니다. 특히 자유한국당에 묻습니다. 국민이 뽑아준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라며 청원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21만344명이 참여했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를 문제삼아 4월 29일 사실상 한국당 청원에 대한 맞불 형식으로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 청원은 겨우 33만7964명, 북한의 핵 개발 방치·묵인 등을 이유로 바로 다음날 청원한 '문재인 대통령 탄핵'에는 25만219명이 각각 동참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대일감정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는 요즘 '일본 극우 여론전에 이용되고 있는 가짜뉴스 근원지 조선일보 폐간 및 TV조선 설립허가 취소'에도 청원 닷새만인 16일 현재 1만6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종편허가 취소 청원'으로 23만6714명의 참여인원을 끌어모은 바 있는 TV조선은 국민청원 단골로 등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국민에게 별로 인기가 없으면서 막말까지 일삼는 국회의원들을 비꼬는 청원도 종종 눈에 띈다. 최근 2.87%의 저조한 최저임금 인상률로 노동계 반발이 극심한 가운데 지난해 1월 "제일 아까운 세금이 입에 걸레를 문 국회의원 월급"이라며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달라는 청원이 27만7674명에 달한 바 있다. 아마 국민청원에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숫자를 넘어서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차가운데서도 유독 국민의 법감정을 자극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행태는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동물국회'를 야기,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돼 경찰에 소환당한 한국당 의원 4명은 1차 소환에 불응한데 이어 이들을 포함한 같은 당 소속 14명은 이번 주 중 출석요구에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대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예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 의원 소환은 야당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1야당은 한 달 평균 2만건에 이른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국민들의 욕망을 배설하는 곳이라고 애써 폄훼하기보다 대다수 민심으로 간주, 겸허히 수용할 때 딴나라당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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