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제주관광대학교 기획부총장 / 논설위원

나이가 들면 신체기능에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잠자리에서 급히 일어나거나 급히 뛰다가 삐끗해서 넘어지면 감각이 무뎌져 조그만 충격에도 큰 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치료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또 건강에 좋다고 해서 허겁지겁 먹다 보면 그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고 운동 역시 갑작스럽게 무리하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듯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변화를 세월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 또한 중년 이후 삶의 지혜인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급작스러운 변화는 그 예후가 그리 좋지 않다. 복권에 당첨되면 삶이 행복해 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지난 2001년 미국의 한 경제학자와 통계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복권 당첨자들은 평균적으로 당첨 이후 10년간 수령금의 16%만을 절약하고 나머지는 탕진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제 나름대로 그릇과 분수가 있나 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오랜 기간 서로 길들여져 온 인습과 관습이 있는지라 급격한 변화가 오면 그에 따른 진통을 겪게 된다. 새 정부 들어 특히 사회경제적 정책의 변화가 그렇다.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과 정부주도형 일자리 정책, 소상공인 자영업자 정책 등이 사회적 진통을 낳고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런 정책변화 역시 신중하게 유연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이다.

고사성어에 개문납적(開門納賊)이란 말이 있다. 원래 문을 열어 도둑이 들어오게 한다는 뜻인데, 준비나 경계를 소홀히 하거나 자만하게 되면 스스로 재앙과 불화를 불러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평소 건강을 잘 유지해 급작스런 질병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회나 국가는 급격한 혁신이나 변화를 택하기보다 모든 것에 유연성을 가지고 변화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간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본의 갑작스러운 경제보복은 평소 일본에 대해 가진 나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안이었다.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는 지난 1965년 어렵게 이룬 정상화를 무색케 할 정도의 변화인데, 특정 소재 수출규제를 통한 갑질 행태라는데 더욱 충격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한일 간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서로는 양국간의 오랫동안 길들여져온 사회적 관습과 인습, 국민 정서들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 정부는 특사를 보내고 또 정상회담을 계기로 갈등 해소를 위해 서로 한발 양보하는 신중함과 포용성을 보였었다. 

또 1965년부터 일본은 관광객을 한국에 보내면서 상호 문화이해와 경제여건 개선을 돕기 위한 민간외교의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다. 서로의 상처와 국가 간 감정을 우회하는 것이 서로의 예의이자 서로 도움이 되는 외교적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속에서 한일관계는 애증의 관계에서 협력의 관계로 또 동반성장의 관계로까지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일본 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어떠하든 간에 기업의 경제활동 제재를 빌미로 치킨게임 하듯 달려가는 것은 일본답지 못한 행태라고 여겨진다.

이건 경제 선진국의 자세가 아니며 이웃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결국 서로 상처만 내고 모두의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좀 더 사안에 대해 신중히 헤아리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일부 언론에서 언급된 '일본의 보복까지 부른 한일갈등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외교문제며, 정부가 미리 나서 일본측과 대화하고 해법을 만들었으면 이렇게 까지 되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사안이 우리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유연성을 이기는 경직성은 없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