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경제부 부국장

제주 1차산업이 사면초가다. 따뜻한 겨울이 가져온 생산량 증가가 예상을 넘어서며 월동채소로 시작한 처리난과 가격하락이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온난재해'라는 씁쓸한 말까지 나왔다. 산지폐기와 정부 수매, 소비촉진 같은 대책도 수차례 반복하면서 '더 이상은 안된다'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식생활 문화 변화와 경기둔화까지 맞물리며 사태는 악화일로다. 그나마 안에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어디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만하지만 최근 정세에는 말문이 막힌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까지 '보복성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했을 만큼 반향이 크다. 민간 차원에서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No Japan'바람도 뜨겁다.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주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후속 조치에 애를 태우고 있다. 정부가 '기우'라는 입장을 내놓기는 했지만 한국산 1차생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가 내려질 때 제주가 입을 타격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 수출실적표에 일본은 중국에 이어 2번째 큰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에 문제가 없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최종 판단 이후 넙치 등 5개 수산물 검사를 강화하면서 제주산 넙치류 수출이 줄었던 학습효과는 아직 생생하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검역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조금만 높여도 제주 농어가가 입을 손해가 커지고 지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진짜 복병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중국 등을 지목해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특혜 지위' 박탈을 요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유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고 하지만 농업 분야만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발등의 불'이다.

제주는 더 심각하다. 1차산업 조수입 1위 감귤은 물론이고 월동채소류 중심인 양파·마늘 등이 맞물려 있다. 개도국 지위 아래 마늘(360%), 감귤(144%), 양파(135%) 등 제주 주요 농산물에 대해 고율 관세를 적용해 보호해왔다. 선진국이 되면 대폭적인 관세 감축이 불가피하다. 일반품목 적용때 마늘은 110%, 감귤은 43%, 양파는 31%로 낮아진다.

선진국은 직불금 등 정부 보조금 지급에 있어서도 제한을 받는다. 보조금을 통해 국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할 수도 없다. 수출 농산물의 국내외 운송 등 물류 보조는 개도국의 경우 2023년까지 활용이 가능하지만, 선진국은 2015년 말로 즉시 철폐됐다. 개도국 지위를 잃는다고 해도 선진국에 주어지는 민감품목 제도 등을 활용해 쌀 등 주요 농산물의 관세감축을 대폭 줄일 수 있다지만 지금까지와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실 배우는 것도 있다. 일본 수출 규제는 소재 산업의 국산화에 불을 당겼다. 일본의 소리없는 우리나라 시장 장악에 대한 경계도 생겼다. 맹목적인 불매 운동이 아닌 각자의 여건에 맞춘 이유 있는 저항이 공감을 샀다. 일본 지식인들이 자국 정부의 적대적 행위를 인정하고 수출 규제 철회 촉구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에둘러 돌아왔지만 이번이 제주 1차산업 경쟁력을 제대로 설정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기후 등 날씨 영향이나 수급 불균형,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 소비 위축,  고령화, 영농비 부담 같은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았다. 길게는 십 수년 가깝게는 몇 년 전부터 대비를 주문했지만 안 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생산자 단체, 농어가가 ‘네 일’이라 미루는 사이 여기까지 왔다.더 이상 내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책임 공방에 '방울 달'순서를 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아무리 견고한 둑이라도 작은 구멍에 무너진다. 그러니 냉정하게 이기는 힘을 찾아야 한다. 알아서 방울을 달지언정 구멍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