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제주센터장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革舊習一刀決斷根株(혁구습일도결단근주)-오래된 습관은 단칼에 자르듯이 뿌리를 잘라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욕망이 일어나면 잠깐 멈추고 생각한 다음 욕망과 타협하지 않고 단칼에 자르도록 결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쁜 습관 혹은 고치고 싶은 습관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율곡 이이의 가르침은 분명 작은 습관 하나라도 고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가르침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도박에 중독된 이들에게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단칼에 자르듯 뿌리를 자르라'는 율곡 이이의 가르침은 진정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실천하기 어렵고, 어쩌면 가장 잔인한 조언일지 모른다. 몇 해 전 이미 정신과적 장애로 공식 인정된 바와 같이 도박중독은 반복되는 도박행위에 대한 조절 능력이 상실된 '질병'이기 때문이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충분한 변화의 동기가 있음에도 조절능력의 상실로 인해 또다시 도박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 도박을 중단하는 행위, 즉 '단도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오늘을 사는 연습을 하지만 실제로 1년 이내 도박문제가 재발하는 비율이 90%에 해당할 정도로 도박중독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단도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회복자'라고 부른다. 마치 당뇨병 환자가 평생 당 수치를 관리하듯이 회복자는 지속적으로 단도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실수'와 '재발'을 경계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매 순간 '革舊習一刀決斷根株(혁구습일도결단근주)'를 실천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도박중독에서 벗어나는 회복의 과정은 평생 진행된다. 즉, 도박중독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의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어려움과 불신에서 비롯된 가정의 파괴, 2차 범죄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을 일으키므로, 가능하다면 중독되기 이전에 도박중독의 위험성을 알고 경계하여 폐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도박 중독의 예방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에 대한 고려는 필수가 아닐 수 없다. 어린 연령에 도박을 접할수록 문제성 도박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불법 온라인 도박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또래 문화처럼 확산되면서 더 이상 도박은 성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속이 가능한 휴대전화로 게임처럼 도박을 즐기고 있으며 단순 도박행위 이상의 고금리 불법 사채, 학교 폭력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도내 청소년 도박문제 심각성이나 예방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해 보인다. 여전히 도박문제는 일부 비행청소년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하며, 일선에서는 예방교육을 통해 도박에 대해 모르던 학생들이 도박을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도박은 우연한 기회에 혹은 주변 친구, 선후배의 소개로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청소년들은 또래 문화에 쉽게 젖어들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도박문제의 심각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예방교육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기보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노출될 가능성을 예측하고 도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생애주기별 대상에 따른 예방교육을 확대하고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 및 치유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조성하여 도박문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정, 학교, 지역사회 모두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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