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챔터 대표·논설위원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은 이제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자본 시장의 큰손인 기관투자자들에게 있어서도 주요 화두가 됐다. 재무적 투자수익 창출만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선을 창출하는 것이 기관투자가의 주요사업 목적 중 하나가 된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운용자산이 6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기관투자자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2018년 투자 기업들에 서한을 보내 '재무적 성과를 넘어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성취할 수 있는 경영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핑크는 이어서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으면 상장, 비상장 따질 것 없이 기업들은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더 구체적인 사례도 있다. 캘리포니아 교사연금 펀드와 뉴욕의 투자운용사인 자나 파트너스는 2018년 애플로 하여금 아동의 애플 제품 과사용을 제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20억 달러 규모의 애플 주식을 공동 보유·운용하고 있는 기관이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해 전격적으로 의견을 낸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을 위해 핵심성과지표 가운데 사회적 가치 달성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겠다는 대기업 집단이 등장했을 정도다.

보스톤컨설팅그룹의 추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사회적 책임에 중점을 둔 운용자산 규모는 약 23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 배경에 있는 이해관계자 집단이 재무적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익 증진을 운용목적으로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2018년에는 투자 활동 시 기후변화 관련 재무공시 태스크포스의 권고에 따를 것에 동참한 금융회사가 150곳이 넘었고, 이들의 운용자산 총액은 82조 달러를 상회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가치 실현에 뛰어난 기업이 재무적 성취도 또한 높았음을 시사하는 여러 연구에서 보듯이 재무적 수익률 달성과 사회적 가치 실현은 서로 충돌하는 경영 목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구성원의 동기부여와 열정 측면에서, 재무적 수익 극대화를 단일 목표로 채택한 기업보다 사회적 가치 실현 목적을 적극 내재화한 기업이 훨씬 뛰어나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기여 양 측면에서 더 나은 실적을 거두었다는 평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일례로, 유니레버는 자사 소비재 제품 포트폴리오에 사회적 가치 실현을 내재화한 '목적 지향적 브랜드'라는 브랜드군을 설정하여 운용한 결과, 타 브랜드군의 성장률을 50% 초과하고 유니레버사 전체 성장률의 60%를 차지하는 실적을 올렸다. 또한 소비재, 기술, 금융 업종에 속하는 미국의 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브라이트하우스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경영 목적을 내재화한 기업들의 총주주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이들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특징은 기존과는 다른 사회적 가치 실현 패러다임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된 기업 자원의 일부를 구색 맞추기 식으로 사회적 가치 실현에 투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원과 인력 전체를 전사적 차원에서 재구성하여 전략, 기업문화, 투자판단, 소셜 임팩트 등의 요소마다 토대를 새롭게 다진 것이다. 이 기업들은 우선 기업활동의 목적을 '무엇'이 아니라 '어째서'라는 질문에 입각해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리고 임직원들로 하여금 기업의 목적을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경영진은 핵심적 의사결정 과정 및 일상적 활동에 내재화하고 스며들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설정한 목적과 그에 따른 기업 활동이 이해관계자의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평가한다. 최종적으로 그 이해관계자의 기업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시민으로서 기업의 역할(Corporate citizenship)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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