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 논설위원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마는,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다. 고작해야 매년 한 차례, 여남은 날 남짓한 일정이지만 해외여행은 매번 나를 들뜨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에 촬영장비와 생활용품들을 대충 챙기고 이레가량의 일정으로 나서는 국내여행도 즐거움이 쏠쏠하다. 서너 해 전에 '신(神)의 영혼'이라 불리는 '오로라'(Aurora)를 담으러 캐나다 북부의 극지방인 옐로스톤(Yellowstone)으로 출사여행을 갔었다. 그후로는 완전한 자유여행 보다는 패키지투어를 이용하고 있다. 패키지는 아무래도 개인여행 보다는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여행의 피로도를 훨씬 줄여주는 패키지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한 번의 여행은 우리를 세 번 즐겁게 한다. 우선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벌써 달궈진 컨디션은 마침내 현지여행에 이르러 즐거움이 절정에 이른다. 어디 그뿐이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해보고 이것저것 정리하며 세 번째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여행은 우리 삶에 마치 산소와 같다. 한편 자녀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여행은 그 어떤 프로그램에 못지않을 만큼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옛말에도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보내라 하지 않았던가.

여행은 이처럼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우선 많은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 여행하면 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떠올린다. '보고 느끼고 바꾸자'가 그것이다. 보되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내재적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다음은 느끼는 단계로 이어진다. 사실 제아무리 많은 것을 볼지라도 그에 따른 아무런 느낌과 생각이 없다면 이야말로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느낌이란 오직 내 마음의 울림이다. 이 느낌의 단계에서 비로소 변화의 싹이 튼다. 그리고는 이 싹이 행동과 삶의 단계로 옮겨 가면서 여행의 효과는 차츰 꽃을 피워가게 될 것이다. 여행도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안목과 효과관리 테크닉이 업그레이드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 것인가. 우선은 생각이다. 
한 예로 여행 중에 호텔에서 체험한 수도꼭지를 떠올려 보자. 다이얼식은 이미 고전이고, 버튼식, 레버식, 전자감응식 등 저마다 물 나오게 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이처럼 수도꼭지 하나만 볼 때도 그동안 우리의 생각은 어느 한 방식에만 닫혀 있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의 문을 활짝 열고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는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고 저들의 역사와 전통문화, 가치관과 생활양식 등을 이해하려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월적 사고나 사대적(事大的) 의식 등은 모두가 편견으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고작용을 방해할 소지가 있기에 버려야 한다. 이처럼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소득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보이는 현상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 바로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바캉스(vacances)란 '비우다'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다. 바캉스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쉼'이다. 정말이지 스트레스로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쉼이란 카타르시스의 명약이다. 쉬면서 아픔도 앙금도 다 비워내고 피폐(疲弊)된 자아를 일으켜 세워 그 자리에 다시 희망을 채워나가야 한다. 비우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맞아들일 여백이 없다. 

정말이지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그냥저냥 살게 되기 마련이다. '보고 느끼며 바꿔가는' 인생, '쉬며 비우며 채워가는' 여정, 이러한 인생 여정은 결국 한 길에서 만나는 같은 뜻 다른 말이다. 나는 이러한 세 가지의 생각이 나의 삶을 가치있고 의미있게 엮어가는 지혜라 여기며 오늘도 이 아침을 연다. 인생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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