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희 ㈔제주역사문화연구소장 / 논설위원

2017년 개봉했던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을 TV로 우연히 다시 봤다. 알다시피 영화의 진행 축은 침략한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 '최명길'과 항복은 없고 최후의 1인까지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이다.  최명길과 김상헌 모두 충신으로 그려졌다. 이들의 대화는 자신들의 논리로 무장해 있고 접점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남한산성을 이야기하는 건 영화를 보는 동안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는 제2공항 상황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최근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최근 극한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제2공항과 관련한 이야기가 안주로 올랐다. 저마다 나름의 생각과 논리로 제2공항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지역의 발전이나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지역의 수용능력 여건을 초과하는 과다한 입도객은 제주의 정체성과 자원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불가능하게 함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것은 입지지역 선정의 부적절성이나 조건의 조작 의혹 같은 기술적 요인을 넘어 과연 4500만명까지 수용 할 수 있게 하는 공항이 추가로 필요하냐는 근원적 문제까지 접근한 것이다.
제2공항 문제는 이제 갈등을 넘어 격랑으로 치닫고 있다. 제2공항의 1차적 갈등의 불씨는 지난 2015년 11월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다. 당시 도는 "제2공항 후보지는 별도의 의견수렴 없이 선정, 제시할 계획"이라고 언급하자, 도의회와 도민사회에서는 입지 선정과 관련해 사전 도민의견 수렴과정 없이 진행된다면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무리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주민동의나 공감대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개발독재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3년 관광객 1000만명을 찍은 이후 이주민 등 입도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도민들의 의식변화도 10여 년 전의 상황과 사정을 달라지게 했다. 관광산업의 양적 성장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제기될 정도의 입도객의 과도한 증가로 자신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공항이 새로 들어서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하수가 바다로 그대로 흘러들고, 유일한 수자원인 지하수가 메말라 가고, 치안 불안감은 증폭됐다. 그뿐인가 밀려드는 쓰레기는 산처럼 쌓여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고, 교통체증의 일상화에 노출되어 있으며,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중산간은 난개발로 신음하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그동안 의혹 제기와 갈등국면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오는 10월 기본계획을 고시하겠다는 로드맵이다. 기본계획 고시는 아직 제2공항 후보지인 지역을 법적으로 확정하는 것으로 기본계획이 고시되면 기본 및 실시설계,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토지수용과 착공 등 본격적인 공사로 이어진다.

기본계획 고시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제2공항을 놓고 남한산성 영화속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결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파국을 초래한다.
접점을 찾는 방법과 수단으로서 마주 앉는 토론은 필수조건이고, 필요하다면 한번 시도한 바 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도가 절반을 넘긴 공론조사도 대안으로서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명분쌓기용 시늉이라면 공허하다. 서로 상대에게 '당신이 옳다'고 할 수 있는 역시사지가 필요하다.

'지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 아니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강정의 아픔을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재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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