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육성보전위원 시인·논설위원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총각시절에는 처녀들이 남자인 나보다 더 착하고 아름다웠다. 제목으로 활용한 '궤삼봉'은 제주도 남녀의 애정을 뜻하고, 자손을 아끼는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가짐이다. 한마디로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제주도 남녀도 육체를 지녔으니까 연애도 하고 결혼을 한다. 자연히 성희에 따른 감정과 행동이 동반하므로 그 상황에 맞는 제주어가 빛을 발하게 되지만, 너무나 노골적이고 저속한 표현도 많아서 은밀하게 주고받는 밀담 정도로만 떠돌아서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 두려운 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제주어 시집 '못해도 좋난 아프지나 맙써'에 수록했다.

왕년엔 그랬지. 남자 앞을 지나려면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못했으니 농지거리도 서슴없는 태도는 남자의 만용이었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애교'라는 금과옥조를 들먹이거나 '용기있는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을 실천했다가는 지금은 미투에 걸려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원시시대에는 동굴에서 살면서 밀림에서 먹을 것을 구했기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려면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수새처럼 독특한 휘파람 소리로 부르거나 사향노루처럼 암내를 풍기듯 회임 기간이 된 여자들은 자연적으로 야릇한 냄새를 멀리 보내어 근처에서 사냥하는 남자를 끌어들였는데, 지금은 지하철도 함께 타야하고 당직도 같은 날에 서야 하므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퇴화했다. 더하여 애완견은 침대에서 더불어 자고 옷을 입히고 고급 유모차에 모시고 다니면서도 직장 동료인 남자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실없이 던지는 농담에는 코에 바농을 세운다. 바농은 바늘의 제주어이다.

그 당시는 워낙에 가난해 여자 아이들에겐 인형도 귀해 베개를 물애기로 삼아 업으면서 미래의 어머니 꿈을 간직했는데 미투가 살벌한 세월이 더욱 흐르면서 필요에 따라 애완견 대신 로봇인간이 연인역할과 남편 역할을 하기 위한 남녀 접근금지의 엄격함인가.

제주도는 화산지대로 척박하여 논을 만들 수 없고, 섬이라 교역이 어려웠으니 지독히 가난했다. 더하여 조정에 바칠 조공에 시달리느라고 행색부터가 갈중이 하나로 사시사철을 견뎠다. 어느 저를에 요리란 말인가. 냉수 한 사발에 된장 풀고 숟가락으로 오이 뜯어내서 섞으면 그냥 냉국이었다. 

말을 키우거나 전복을 따거나 감귤농사를 지어도 나라에 바칠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여자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폐활량이 커서 해녀가 됐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저승 밭에서 딴 전복으로 이승 식구들을 먹여 살리다 보니 애교는커녕 남편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바다는 없으면 그날로 끼니를 굶어야 하니 남편이 외간 여자와 바람을 피워도 애써 견디었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 남자는 매너 빵점이고, 제주도 여자는 무드 빵점'이라는 말이 한때 창궐했는데 수긍이 갔다.

육지 남편들은 늦게 귀가할 때는 마누라를 생각해서 사과나 빵이라도 사 들고 가건만 제주도 남자들은 술 처먹고도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서 곤한 잠을 자는 마누라에게 저녁 차려달라고 했으니 남편이 오도록 거울을 보면서 단장하고 기다리는 육지 여자처럼 애절한 콧소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제주도 여자들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해서 사생결단을 하겠다고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면 동네 사람들이 그 깐 일로 소란을 피운다고 욕을 했다. 그러니 억장이 무너져도 벼루고 별러 한 번 정도 허운대기(머리채)를 뜯고 없는 일로 마무리했었다. 그래서 제주도 남녀에게 정사(情事)는 있어도 정사(情死)는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어느 여자도 젊은 시절엔 다 예뻤고 남자보다 착했다. 그런 세월이 모질게 흘러서 미모가 있던 자리에 위엄이 도사리는데 늙어서 능력이 없어진 남편더러 지난 과오를 반성하면서 살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집을 지키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아량을 베풀어 주면 얼마나 좋으랴.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