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민주주의는 우리의 정치적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서,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실현됐다. 민주주의의 원형인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유, 평등, 연대의 원리에 기초하여 일반 시민들이 직접투표를 통해 이루어졌다. 반면 근대 민주주의는 시민권의 보장을 위한 법의 지배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이상과 정치적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이상이 결합한 대의제 민주주의로 변형됐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제는 일반 시민들을 정치의 장에서 몰아내고 사적 영역에 안주하는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시켰다. 그 결과,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공적 토론과 시민의 집합적 의사 형성을 불가능케 했다. 이런 근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참여 민주주의이다. 참여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은 자의 동등성'에 기초하여 일반 시민들이 공적 의사 형성과 집행에 있어 정치적 주체로서 활동케 한다. 

지방자치는 자치권의 근원인 주민에 의한 자치로서, 풀뿌리민주주의를 이념적 배경으로 하여 주민이 직접 또는 대표자에게 지역의 공적 문제를 지역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제도이다. 이는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지방자치제는 '분권'과 '참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운영된다. 전자가 지방자치의 필요조건이라면, 후자는 충분조건이다. 양자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나, 특히 주민참여가 중요하다. 주민참여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된 지방분권은 지방으로 이양된 권력이 소수의 지역 엘리트에게 독점됨으로써 지역전제주의가 발생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앙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도 필요하지만 이양된 권한이 지역 내에서의 분권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지역 내의 분권은 주민참여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주민참여는 정치적 엘리트가 아닌 보통 일반시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정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통해 이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된 활동임과 동시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에 대한 통제장치이다. 주민참여는 규범적 차원에서는 행정의 민주성을 확보하고 공무원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주며, 지역사회의 통합기능을 강화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주민참여의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보통 지역주민들이 지역정책에 자발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 이해관계 당사자 혹은 이익단체나 시민단체들만이 주민참여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진정한 지방민주주의를 실현치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공공갈등에서 당사자로 참여한 주민단체 이외의 외부의 시민단체가 참여할 경우, 공공갈등이 장기화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보통 일반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 참여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역현안 문제에서부터 지방정부의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통 일반 지역주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수렴되어야 갈등이 최소화되면서 실질적인 정책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일반 시민들을 정책 혹은 국책사업에 대한 의사형성에 참여케 하기는 쉽지 않다. 주민참여에 대한 저변기반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제주공동체를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공동체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주민참여에 대한 관심과 향후 주민참여 의향이 높아진다고 했다. 또한 생활자치의 핵심인 지역 공동체적 요소가 지방자치를 통해 실현될 때 지역발전은 더욱 촉진된다고 한다.

국제자유도시의 개방화, 관광객과 이주민의 증가, 해군기지 건설, 제2공항 건설에 따른 공공갈등의 발생 혹은 장기화 등 우리가 예상치 못한 환경들이 새로운 제주공동체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의 제주공동체 수준에 대한 진단과 새로운 제주공동체에 대한 개념 재정립, 이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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