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범 행정학박사 / 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 논설위원

3년 전 한 마을회 임원들 주도로 혈세가 투입된 마을회관을 민간에게 20억원에 불법 매각했다는 언론 보도가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해당 건물과 토지는 하수종말처리장 확장에 따른 인근 지역 주민반발을 무마하고자 행정이 고육지책으로 소유권을 마을회로 넘겨준 곳이었다. 2004년에는 당시 마을회장에게 매각해 공공재산 사유화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마을 공동재산 이용과 관리는 허점투성이였다. 매각대금은 주민 10가구가 각각 1억원씩 나눠 갖고, 나머지는 수익사업과 채무 변제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이 모르쇠로 일관하는사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했고 주민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일부 주민들의 몰지각한 행동이 마을 공동체 운영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최근 이주 열풍 속에 관광객 증가와 과잉 개발로 인해 내용만 다를 뿐 마을 운영을 둘러싸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 찬반갈등이 급기야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고 있는 선흘2리가 대표적이다. 사업예정지는 세계자연유산 거문 오름과 람사르 습지도시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각별한 환경 보전의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동물 500여 마리를 가두고 관람하는 반 생태적인 사파리를 짓는다는 데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주민들이 몇이나 될까. 물론 다양한 주민들이 실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민들 각자의 가치관과 선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며, 이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 마을 공동체는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자구적인 노력의 결집체다. 따라서 마을 공론장에서 마을 주민들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작동되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 4월 선흘2리 주민들은 마을 향약규정에 근거해서 임시총회를 열고 주민의 77%가 반대 의사를 모았다. 마을 공식기구로 반대 대책위를 구성하고, 사업절차의 중단을 청원했다. 전국적으로 1만 명 이상의 반대서명도 받았다. 주민들의 선택은 마을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대상화되거나, 형식화되지 않겠다는 각성된 집합행동의 표출로 보여 진다. 문제는 이를 주도했던 마을이장이 마을발전기금 7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사업자와 상생협약을 체결하면서 불거지고 있다. 4월 임시총회의 반대 결의 결과자체가 향약규정 위반이라면서 어깃장을 놓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개인의 지혜나 경험이 마을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마을은 민주적으로 결정된 투명하고 합리적인 제도에 따라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반대 주민들도 마을 총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맺은 상생 협약에 대한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로써 동물테마파크 사업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양측의 내부적 상호작용은 법의 판단이라는 외부적 해결방안을 끌어들임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추동할 것이다. 소규모, 대면성, 친밀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은 마을에 더 큰 갈등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상호 협력과 소통을 통해 마을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면 마을의 지속성 유지는 어렵다. 자치의 상실, 마을 민주주의 위기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여기까지 온데는 제주도 당국의 책임도 크다. 환경영향평가 편법 회피 논란, 도시건축공동심의원회 부대조건 불이행 문제 등 일련의 과정에서 도 당국은 사업자에게 경종을 울려도 시원찮을 판에 뒷짐만 지고 찬반 갈등을 부추겼다. 얼마 전 원희룡 도정은 공약 추진상황을 발표했다. 유독 환경관련 공약의 이행 정도가 떨어진다고 자백했다. 사업 규모는 두 배 커지고, 사업내용도 180도 달라졌다. 동물테마파크 환경영향평가 재실시가 절실하다. 청정과 공존을 도정 철학으로 하는 도정이 선흘2리 마을이 겪는 마을 민주주의 위기를 수수방관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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