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우 한림고등학교 교사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고, 일본 전범 기업인 신일철주금은 1인당 1억원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을 압류하고 주식 압류 소송을 준비하자, 일본은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규제 및 무역에 있어서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의 조치로 한일관계를 경색시켰고, 국내에서도 일본 상품 불매와 '노 아베'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불안정한 한일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대화의 분위기에서 존재감을 잃은 아베 내각은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회복하고자 재무장할 수 있는 개헌을 하겠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시기 강제 동원된 한반도 청년의 인권을 외면하고 과거사의 문제로 경제보복을 하는 아베 내각의 극단적인 태도를 보며 심히 우려스럽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된 산업국가로 아시아의 주도권을 잡고 이웃에 대한 식민통치를 감행한다. 1910년 8월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3대 통감 데라우치 사이에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을 8월 22일에 조인하고, 29일부터 발효시킨다.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막을 내리고 국권이 피탈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한국병합조약 불법성에 대한 논란은 1905년 을사늑약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교과서에는 일제의 침략이 주요인으로 정리되고 있으며, 이어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사로 서술되고 있다. 500년 이상 지탱해온 왕조가 대한제국으로 바뀐다고 국권이 보존될 수 없었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관련해서 내년부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 중심으로 서술된다니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1894년 역동적인 민중들의 염원을 외세로 제압한 낡은 통치가 그 이유 중의 하나였으리라 생각된다. 3년 전 부당한 권력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통치는 국민을 향해야 하고 권력은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양국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의한 피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전쟁범죄를 사과하고 참회하는 독일과 너무 거리가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태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강화 조약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보다 일본의 태도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막강한 존재를 과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제 징용돼 청춘을 착취당한 사람들의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역사 정의라 할 수 있다. 일본이 부정하고자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소녀상'과 '강제동원노동자상'이 전국에서 해외까지 세워지고 있다. 제주에서도 2015년 제주시 방일리 공원에 소녀상을, 2017년 제주항여객터미널에 노동자상을 민간인 주도로 세워졌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제주에는 일제가 오름마다 파놓은 진지동굴과 알뜨르비행장 등 전쟁에 대비한 유적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강제로 동원되어 청춘을 빼앗긴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동북아의 평화와 공존을 생각하며 조형물이 있는 곳을 한 번쯤 방문해볼 일이다. 경술국치를 생각하고 현재의 우리를 가다듬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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