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산간 일대에 자리잡은 연못들은 상수도가 개선되기 이전에는 농업용수 뿐만아니라 식수용으로 활용됐던 소중한 생활문화유산이다.


◈애월읍 소길리 거리못·좌랑못
◈장전리 건나물
◈유수암리 물거리못


 국도 16호선을 따라 애월읍 소길리에 자리잡은 거리못·좌랑못을 찾아 간다.

 멀리 한라산 정상은 여전히 흰띠를 두르고 있지만 아래녘 중산간 마을은 지금 겨울의 흔적을 벗고 봄채비가 한창이다.

 봄의 전령인 꽃소식이 이어지고 누렇던 들판도 서둘러 푸른 옷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른 볕아래 젖은 쇠스랑을 말리는 풍경이 무척 정겹다.이제 막 밭갈이를 한 대지에서는 구수한 흙냄새가 아지랑이를 타고 모락모락 피어오른다.그곳에 120여가구 360여명의 주민이 사는 전형적인 제주의 중산간 마을인 소길리가 있다.

 이곳에는 대표적인 연못으로 거리못과 좌랑못이 있다.소길리에서 농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500m가량 들어가면 거리못이 있고 이곳에서 다시 1.2km가량 더 가면 좌랑못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못은 면적이 600㎡가량 되며 크게 식수용 봉천수를 가둬두는 못과 우마용 못,그리고 밭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몸을 씻었다고 하는 못 등 3개의 못으로 구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최근에는 가뭄 탓에 못 가장자리에는 듬성듬성 거북이 등처럼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고 수생식물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좌랑못은 거리못의 두배가 되는 큰 못이다.면적은 약 1200㎡.이 마을 이공배씨(85)는 “농로포장과 함께 거리못·좌랑못 모두 전체 면적이 30%가량은 잘려나간 상태”리고 말했다.

 좌랑못은 수탈의 아픔이 밴 곳이기도 하다.

 구전에 의하면 이 못의 이름은 조선시대 정 6품벼슬에 해당하는 좌랑에서 비롯됐다.좌랑 벼슬을 한 사람이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았으며 식수는 주변 봉천수인 ‘괸물’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좌랑은 권세를 이용해 정신적 박해와 가렴주구를 일삼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원한을 품게 됐다.

 결국 얼마안가 좌랑이 죽게되자 원한을 품은 주민들이 집을 헐고 그 자리를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

 구전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1929년 가뭄이 심해 못의 물이 다 마르자 주민들이 못바닥을 정비하기 위해 흙을 파냈고 이 과정에서 주춧돌이 발견된다.주민들은 이 주춧돌이 좌랑 집터의 일부라고 믿고 있다.

 이 못도 거리못 처럼 돌담을 쌓아 식수용 못을 따로 조성했다.식수용 못 주변은 버드나무가 들어서 있고 운치를 더해준다.

 또 느릅나무과의 팽나무·꾸지뽕나무와 찔레나무,창포,쇠비름,쇠무릅,억새,환삼덩굴,닭의장풀,수크렁,뚝새풀 등의 식물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다.

 이가운데 창포는 천남성과에 속하는 것으로 호수나 연못에 나는 다년초다.길이는 60∼90㎝로 식물 전체에서 향기가 나 여인들이 머리를 감을 때 썼다.꽃은 흰색으로 6∼7월에 피며 줄기와 잎은 향료 혹은 약용으로 사용한다.

 장전리에 자리잡은 건나물은 최근 장전리청년회(회장 강두희)가 중심이 돼 이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건나물은 장전리에서 동남쪽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고 면적이 1000㎡가량 된다.예전에는 붕어가 서식하고 백로와 왜가리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연못 입구에 자리잡은 수백년 묵은 소나무는 따사로운 봄햇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사방으로 가지를 뻗었고 주변에 조그만한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마을 청년들은 건나물이 갈수록 오염되고 쓰임새없이 방치되자 작년에 군청에서 도움을 받아 연못 바닥의 뻘을 걷어내고 다시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어느 정도 물이 차면 붕어와 잉어 등도 풀어놓을 계획이다.

 물거리못은 유수암천의 끄트머리에 해당된다.유수암(流水巖)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못을 이루고 있다.

 유수암은 말그대로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다.이 물은 대개 네칸으로 구분된다.첫째 통은 식수로 쓰며 둘째 통은 음식물을 씻기 위한 것이다.셋째 통은 빨래용으로 쓰며 이곳에서 50m가량 더 내려가면 물거리못이 있다.

 주변에는 쇠비름과 쇠벌꽃,수련,망초,사마귀풀 등의 식물과 왼돌이물달팽이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때 이 물을 이용해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기도 했으나 수지가 맞지않아 오래전에 폐답됐다.

 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탓에 생활하수가 유입되고 오염도가 심해 일부는 매립돼 감귤 선과장이 들어섰다.

 이 마을에 사는 강철훈씨(40)는 “초등학교 다닐 때만하더라도 물거리못과 주변 논에 미꾸리가 수두룩 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찾아볼 길이 없다”고 무척 아쉬워 했다.<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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