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천혜의 자연경관 외에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섬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건축 분야에서는 제주인의 역사를 간직한 근대 건축물에 더해 세계적 건축가들의 손길이 하나 둘 쌓이면서 현대건축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심과 한적한 해안, 들판에서 원래부터 아름다웠던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더욱 빛내주는 제주의 건축작품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수풍석박물관

#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

재일동포 출신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성을 얻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은 말년에 제주에 수풍석박물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 대표작들을 쏟아냈다. 

서귀포시 안덕면 핀크스 비오토피아에 자리한 수풍석박물관은 말 그대로 물과 바람, 돌을 테마로 삼고 있는 3개의 박물관이다. 시시각각 바닥의 물에 비친 하늘에서 대자연의 움직임을 느끼는 물박물관, 긴 복도를 걸으며 나무판 틈새를 통하는 바람에 귀기울이는 바람박물관, 하나의 돌조각과 곱게 녹슨 벽, 산방산이 조화를 이루는 돌박물관 등이다. 미술품을 감상하는 박물관이 아닌, 자연을 경험하고 명상을 하며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건축이다. 

방주교회

인근의 방주교회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물 위의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건물이다. 햇빛이 자연투광되는 신비로운 천장과 넓은 잔디밭, 특히 돌이 깔린 물을 캔버스 삼아 건물이 비친 모습은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한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다다오도 그만의 방식으로 제주의 신비로운 자연을 공간에 담아냈다. 서귀포시에 위치한 본태박물관과 유민미술관, 글라스하우스가 그의 작품이다.

본태박물관은 노출콘크리트와 건축요소로 차용된 빛과 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점이 특징이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건축 환경'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 있으며, 공간 설계도 다양해 탐험하는 기분으로 돌아볼 수 있다.

유민미술관

유민미술관은 섭지코지의 물, 바람, 빛,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도록 설계됐다.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2017년 아르누보 유리작품을 전시하는 유민미술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2018 세계 인테리어 페스티벌 대상을 수상했다. 사각 프레임에 들어오는 성산일출봉처럼 자연이 그대로 그림이 되는 묘미도 느낄 수 있다.

섭지코지에서는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클럽하우스 아고라도 감상할 수 있다. 

김영수도서관

# 도심속 '명물'

바쁜 사람들로 부대끼는 도심에서도 오랜 세월속에 축적된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제주목관아 앞에 있는 관덕정(觀德亭)은 익숙함에 그 가치가 종종 잊혀지곤 하지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7-제주편」을 통해 제주에서 가장 상징적인 역사적 건물로 꼽은 곳이다. 건물은 사방이 탁 트이게 뚫려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새부리 모양으로 뻗어 나온 재료를 기둥 위에 두 개씩 짜 놓았다.

관덕정 인근의 제주북초등학교 '김영수도서관'과 '순아커피'는 제주 출신 권정우 건축사의 작품이다.

김영수도서관은 학교도서관 옆으로 지금은 쓰임새를 잃어버린 관사, 창고를 하나로 연결해 햇볕과 자연, 원도심 풍경을 모두 담아낸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시멘트 미장과 벽지를 걷어내고 리모델링한 순아커피에서는 100년 역사를 간직한 흙벽·목조 건축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만난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원도심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건축과 미술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아라리오 뮤지엄

아라리오 뮤지엄은 해변공연장 옆 탑동시네마와 탐라문화광장의 동문모텔I·동문모텔II로 나뉜다. 2000년 초반 제주에서는 드물었던 멀티플렉스 영화관, 1990년초 상권이 신도심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제주시에서 가장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칠성로의 추억을 떠올리며 전시관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동문시장 옆에는 1965년부터 기성세대의 추억과 낭만을 함께 해온 영화관이 있다. '동양극장'에서 '시네하우스'로 이름을 바꾸고 2000년대 초반까지 운영됐던 이 영화관은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제주 현대건축가 1세대 김한섭 건축가가 설계했다.

제주 최초의 복합건물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여객선을 떠올리게 하는 오른쪽 원형 창문과 파도를 닮은 굴곡진 지붕 등 제주적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와 비슷한 곳은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의 옛 서귀포관광극장이다. 1963년 개관한 서귀읍 최초의 극장으로 현재는 지붕이 무너진 상태 그대로 재개관해서 각종 공연이 열리는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테쉬폰

# 휴식과 감흥

산지등대는 제주항과 부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 운항을 위해 1916년 건립돼 지금까지 바다를 비추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1999년 현대식 등대를 새로 지었지만 동쪽의 옛 등탑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라봉 중턱에서 드넓은 바다와 함께 옛 등대를 바라보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시돌 목장에서 만날 수 있는 '테쉬폰'은 아주 작고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다.

물결 모양의 아치가 연속된 조가비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둥 없이 내부 공간이 넓은 형태를 띠고 있다. 벽과 지붕의 경계가 없는 이국적 모습에 타국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결혼을 앞두고 영화같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예비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테쉬폰 양식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가까운 '테쉬폰(Cteshphon)'이라는 지역에서 2000년 전 지어진 건축 형식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조민석의 '다음 스페이스닷원' '티스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승효상의 '제주 추사관', 이상림의 '4·3평화기념관', 윤웅원·김정주의 '조랑말 체험공원' 등도 기행자들에게 감흥과 휴식을 주는 건축물이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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