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자 할머니가 최근 제주4·3평화재단에 기증한 1949년 9월 14일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촬영사진.

김춘자 할머니, 할아버지 유품 6점 평화재단 기증
성금 100만원도 기탁…“4·3영혼 안식과 평온 기원”

4·3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팔순 할머니가 4·3 당시 사진과 성금을 기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9일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에 따르면 4·3 유족인 김춘자 할머니(80)는 최근 4·3평화재단을 방문해 70년을 간직해온 4·3 사진 6점과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제주시 화북 거로마을 출신인 김 할머니는 4·3 당시 9세 나이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막내고모가 총살을 당하거나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김 할머니 아버지와 4·3 당시 여중생이던 막내고모는 1949년 2월 20일 도두리 궤동산에서 주민 70여명과 함께 집단 총살을 당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아버지와 막내고모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쌍둥이 작은아버지 중 한 분은 고산동산 인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또 다른 한 분은 인천형무소로 끌려가 수형됐다.

김춘자 할머니(오른쪽)

김 할머니가 4·3평화재단에 기증한 사진 6점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다. 제주공립농업중학교 졸업기념 사진과 화북보통학교 졸업기념 사진, 제주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기념촬영사진 등이다.

이중 1949년 9월 14일 촬영된 함명리 예배당 헌당식 사진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찰간부와 지역유지, 마을주민들이 참석해 촬영한 사진으로 지명 유래부터 아픈 역사 흔적이 담겨 있다.

4·3 당시 제주군 책임자로 진압작전을 주도한 함병선 수도경비사령부 보병 제2연대장과 작전참모 김명 대위는 봉개마을을 재건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조합해 마을 이름을 함명리로 바꿔버렸고, 훗날 수모를 견디지 못했던 주민들에 의해 봉개리 명칭을 되찾았다.

김 할머니는 “늘 4·3평화공원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님 위패에 위안을 받는다”며 “이렇게 사진을 기증하니 4·3평화기념관과 평화공원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또 성금 100만원을 기탁하면서 “4·3영혼들의 안식과 평온을 위해 평화공원에 작은 나무 한 그루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사진과 성금에 감사를 드린다”며 “사진은 온라인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 자료로 등록하고 성금은 평화의 숲 조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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