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gender sensitivity)은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일상생활속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남자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비하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는 십여년전부터 국내에서 사용됐으며 국제적으로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된 이후 통용됐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판결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당시 대법원 2부는 지방의 한 대학교수 A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패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14건의 성희롱을 했다는 사유로 2015년 해임되자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해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심사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징계사유를 모두 사실로 인정하고 해임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에서 재판부는 "피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성범죄 관련 소송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하고 판단했어야 옳았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성희롱 소송의 심리와 증거판단의 법리를 제시한 최초의 판결로 이후 유사한 사건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대법원은 같은 해 10월 친구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남성에 대한 상고심에서도 성인지 감수성 결여를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 9일 수행비서 성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 역시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재판에서 얼마나 적용했느냐에 따라 판결이 180도 달라졌다.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시각에서 피해자다움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의 시각에서 피해자의 행동을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그 진술에 의해 엄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되고 권력형 성범죄가 줄어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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