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은 통상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에 대해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 사업의 타당성과 효율성 등을 살펴보는 제도다.

잘만 활용하면 낭비성 예산과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사업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악용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제주를 포함한 전국의 대다수 지자체가 용역을 남발, 막대한 용역비를 투입하고도 부실한 결과물로 되레 업무 효율성만 떨어뜨리는가 하면 용역 결과를 기다리다 허송세월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무분별한 용역을 자제토록 꾸준히 촉구하고 있는데도 공직사회는 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제주시만 하더라도 최근 제주도에 '중앙로 사거리 횡단보도 설치 갈등조정 용역'을 심의해주도록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제주도용역심의위원회가 지역주민들의 갈등 조정을 외부 인력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의견과 함께 '용역 완료 후 활용성이 부족하다'며 재검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용역은 지난 2007년 6월 제주도교통시설심의회가 '중앙로 사거리 교통시설심의(안)'을 이미 가결했던 점에 비춰 사실상 '면피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심의 결과를 토대로 제주시가 횡단보도를 설치했으면 끝났을 일을 지하상가상인회는 반대, 동문·칠성로상인회는 찬성하는 등 갈등이 확산된다며 백지화한 바람에 10년 이상을 끌어온 셈이다.

횡단보도가 설치되면 지하상가 상인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노인이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보행권을 무한정 침해해도 되는 것인지 제주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주시는 용역 심의다, 예산 확보다 하면서 세월만 보내다 담당자가 바뀌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식의 구태에서 벗어나 소신 행정을 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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