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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 아노미강변에서 생각에 잠기다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 논설위원
좌문철
입력 2019-09-15 (일) 17:37:21 | 승인 2019-09-15 (일) 17:54:59 | 최종수정 2019-09-15 (일) 17:54:59

요즘의 뉴스는 열었다 하면 눈살을 찌푸릴만한 내용이 넘쳐난다. 마음을 노긋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주기는커녕 되레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어디 뉴스뿐인가.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불러들이는 TV 홈드라마는 또 어떤가. 단출한 두 내외가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며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시청률 때문인지 그저 권모술수에 중상모략이라니, 다 보고 나면 번번이 뒷맛이 씁쓸하다. 

다른 프로도 아닌, 홈드라마가 꼭 이래야 하나 싶다. 채널을 돌려버리면 그만이지마는, 아마도 요즘 집집마다 TV 채널권이 아내에게 있을 터이고 보면 그냥저냥 따라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된 대립과 분열상은 가히 우려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사회상이 뉴스에 경련을 일으킨다. 대립과 분열은 인간의 영혼을 피폐(疲弊)케 한다. 여간해선 공통분모나 공약수를 찾을 수가 없고, 입 가진 자는 다 나대니 미상불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형국이다. 세대 간의 정서는 극도로 이반(離叛)되어 기본을 들먹이면 '수구꼴통'이요 '꼰대'로 치부된다. 게다가 툭하면 '내 편'과 '네 편'을 무 자르듯이 갈라놓기 일쑤다. 보다 더한 문제는 보편적 가치의 붕괴 현상이다. 

언제부터인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존의 가치들은 박물관 유물 신세가 되거나,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패대기쳐지고, 그 대신 우리 정서에는 생경스런 개별가치들이 자리를 꿰차고 나섰다. 다양성이 현대사회의 대표적 특징의 하나이고 보면, 다양한 문화에 걸맞은 다원적 가치의 등장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존중한다면서도, 실상은 다른 가치를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는 참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가치들 간의 충돌로 인한 우려가 깊어지다 보니, 이제는 어느 것이 참 가치인지조차 판단이 애매모호하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겸 교육학자인 뒤르켐(E.Durkheim)은 이러한 가치의 혼돈현상에서 '아노미(Anomie)'라는 개념을 도출해 냈다. 

또한 흔히들 소통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이 통하면 소통이고 아니면 불통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그래서 소통이란 말은 본시 객관적 입장에 있는 제3자가 할 말이지, 마주 앉은 당사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사회 곳곳에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만연하다. 소시민의 사소한 일상사에서뿐만 아니라, 지도층 사회에서는 되레 더한 듯싶다. 

정의와 힘의 문제는 또 어떤가. 이에 대한 보편적 합의는 '정의가 곧 힘'이다. 정녕 오늘날도 이 명제는 '참'이 되는가. 언제나 올곧고 깨끗하고 바르면 그것은 곧 힘이 되는가. 

고희를 훌쩍 넘기며 오늘에 이른 필자는,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상도 얼마든지 있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 고뇌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의 가르침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짓말도 주저 없다. 독심술(讀心術)을 모르는 필자의 안목으로도 그 심연(深淵)이 들여다보이는 듯한데, 어쩌면 얼굴빛 한 번 변하지 않은 채 그처럼 거짓을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은 '강물에 굽어보면 자기의 얼굴이 비치듯 사람의 마음도 서로에게 비친다'라고 말한다. 오래전 로마여행 중에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틴 성당' 출입구 벽면의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을 관람한 적이 있다. 사람을 심문하거나 증언을 들을 때 이 조형물의 큰 입속에 손을 넣게 하고, 만약 거짓을 말하면 그 손목을 잘랐다는 중세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때 묻히고 더렵혀지며/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정직보다 죄업에 더 연연하며/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유안진의 시 「자화상」의 한 대목이 오늘따라 왜 이리 얄궂은 모습으로 다가와 날 괴롭히는가.


좌문철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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