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제주평화연구원장

오는 9월 21일은 1981년 유엔(UN)이 정한 세계평화의 날이다. 유엔총회 개막일을 기념한 것이다. 유엔의 염원은 세계평화와 공동번영이다. 유엔 헌장 제 1조 1항에 명시되어 있다. 평화가 없으면 번영도 없고 번영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유엔의 염원은 인류의 염원이며 또한 우리들의 염원이다. 일찍이 임마뉴엘 칸트가 영구평화를 주장한 것도 인류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영구평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영구평화는 한낱 구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배신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어차피 상대방은 나를 배신할 터이니 나부터 배신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것이다. 다윈에서 시작된 진화생물학은 죄수의 딜레마를 지지한다. 또한 홉스의 '만인 투쟁'이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호모 사피언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간들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인간들이 자연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만인 투쟁'의 과정 속에서도 상호 협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협력은 같은 종족간의 협력만이 아니라 타 종족, 나아가서 적과도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흡혈박쥐도 동료들 간에 피를 나누어 주는 협력을 하고, 사자들도 먹이를 잡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지만 이는 동족간에만 이루어지는 협력이다. 자연세계에서 타 종족, 나아가서 적과도 협력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지난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무역분쟁으로 세계 경제가 '축소 균형'을 향해 치닫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자유무역으로 모두가 이익을 얻는 확대 균형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배신보다 협력하면 모두 이익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은 왜 적과도 협력할까. 미국 예일대학교의 이대열 교수는 '지능의 탄생'(Birth of Intelligence)에서 그 이유는 인간의 고차원적 시뮬레이션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든지 간에 협력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국가간에 평화를 얻기 위하여 동맹과 세력 균형을 추구했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각각 형성된 거대한 진영 간 동맹은 대표적인 동맹체제였다. 이를 통해 진영에 속한 국가들은 세력 균형을 이루고 생존을 확보했던 것이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초고에 "동맹이 없는 나라는 죽는다"라고 했다.

냉전이 종료되었지만 국가 간의 동맹과 세력 균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죄수의 딜레마가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신보다 협력이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의 능력, 즉 시뮬레이션 능력이 더욱 발전한다면 배신보다는 협력을 택할 수 있을 것이며 죄수의 딜레마는 종식되고 동맹과 세력 균형도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도,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도 인간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동기에서 교육을 중시했지만 결국 인간의 시뮬레이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의 목표는 맹자이든, 순자이든 간에 마찬가지이다.

유엔은 이러한 교육을 '세계 시민 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이라 명하고 이를 증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엔이 인류의 영구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은 동맹과 세력 균형이 아니다. 그러한 방식을 통해 얻은 평화는 일시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칸트가 꿈 꾸었던 인류의 영구평화는 협력을 통한 이익 극대화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세계 시민 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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