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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포럼] '예의(禮儀), 염치(廉恥)'를 기리며강주영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논설위원
강주영
입력 2019-09-16 (월) 19:18:08 | 승인 2019-09-16 (월) 19:41:25 | 최종수정 2019-09-16 (월) 19:41:25

제주성내교회 옆 관덕로2길 19번지, 옛 주소로는 삼도2동 909번지에는 제주화교소학교가 있다. 제주에 사는 화교들의 자녀가 다니는 우리의 초등학교쯤 되는 학교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학교에 있는 깃대에는 걸려있어야 할 대만의 국기도 그 학교의 교기도 없이 아직도 학교가 운영되나 싶을 정도로 허름하지만, 학교 교사(校舍)의 허름함을 알아채기 전에 각각의 현판에 한 자씩 써진 너무나 큰 한자(漢字)를 맞닥뜨리게 되니, 다름 아닌 "禮"(예), "義"(의), "廉"(염), "恥"(치). 네 글자다. '예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를 이르는 말이고,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말이다. 

학교는 모름지기 학생을 가르쳐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세상에 내어놓는 것이 본분이거니와 웅비, 도전, 성취와 같은 진취적이고 성공지향적인 슬로건과 표어를 내거는 것이 차라리 일상이거늘, 남을 대할 때는 예와 의를 다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부끄러운 줄 알라는 훈계는 왠지 지금의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정서를 나타내는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며 모든 것에, 심지어 훈계가 필요한 상황에서마저 머리 쓰다듬고 오냐오냐하는 요즘의 분위기에 오히려 무례함과 잘못됨에 대해 추상같이 서늘하게 꾸짖는 옛 선생님을 보는 것 같은 생경함이 느껴진다. 

모국을 떠나 이름도 풍광도 생소한 이곳 제주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했을까. 외국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권모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대 당하고 살지는 말라는 영악함을 그리고 성공을 위한 영민함을 마음속 비수와 같이 품고 살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았을까.

예와 의로써 대할 사람의 범주에는 자신들의 친지와 동족만이 아니라 옷깃을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며, 외국인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할 만함에도 우선 부끄러운 짓을 하지는 않았는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것은 그들이 처했을 상황을 고려한다면 숙연한 마음이 들어 고개가 숙여질 정도다. 

사실, 옛날 중국인들이 쓴 책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군자국(君子國)으로 부르며, 공자가 자기의 평생소원이 뗏목이라도 타고 조선에 가서 예의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예의와 염치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정도로 예의와 염치를 갖추고 살았기에 우리의 삶을 제 눈으로 보는 것이 공자의 평생소원이 되었을까.

가히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우리 주위에서 들려오는 힘든 소식, 남편을 살해하여 시신조차 찾기 어렵게 만들고, 운전 중 자신에게 항의한다 하여 처와 자식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자 아빠를 폭행하고, 기분이 상했다하여 자신의 차로 사람을 몇 번이나 들이받는 이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단 흉악사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관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남을 예의로써 대하고 나의 잘못에 몰염치와 파렴치가 아닌 염치로써 부끄러워하며 민망해할까. 걸리지 않으면 못할 것이 없고 나의 이익이 있으면 염치쯤은 초개와도 같이 버리는 세태가 아닌가.

중국의 고전 관자(管子)는 예의염치는 인간세계 불가결의 네 가지 인륜에 속하는 사유(四維)에 해당하고, 예의와 염치가 없는 세계는 인간계가 아닌 축생계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격 속에 예의염치가 없다면 아무리 서슬 퍼런 법이 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짐승세계에 다름 아니다. 동방예의지국의 부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잘 못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할 줄은 아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제주화교소학교 앞에서 무뎌졌던 나의 예의염치를 다시 벼린다.
 


강주영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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