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생명이다.건축물은 전혀 요동하지 않고 쥐 죽은 듯 땅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지닌 유기체이다.건축물은 인간과 자연,즉 생명과 생명을 이어주는 공간이기 때문에 생명체이며 당연히 생명체처럼 다뤄져야 한다.

남제주군 남원에도 생명이 느껴지는 건축물이 있다.건축가 김석철씨(아키반 대표·베니스대학 교수)의 작품인 ‘제주 신영영화박물관’이 바로 그것이다.땅과 하늘이 맞닿는 곳에 만들어진,자연만큼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이 건축물은 99년 아시아지역의 건축물을 상대로 주어지는 ‘아카시아 건축상’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인간과 자연의 조화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김석철씨는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는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인 고 김중업·김수근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그의 스승인 김중업씨는 제주대 구본관을 설계했다.고 김중업씨의 작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의 제자가 다시 제주에 살아 숨쉬는 건축물을 남겨놓은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김석철씨는 영화박물관 자체에 생명체의 의미를 부여했다.그는 생명체를 상징하는 DNA구조,즉 이중나선 구조를 공간형식으로 도입했다.영화박물관 곳곳에는 이중나선의 흐름이 배어 있다.트여 있는가 하면 닫혀 있고,박물관 내부 곳곳이 인공조명으로 이뤄져 있다가도 자연채광을 받아들이는 곳을 만나기도 한다.

이 건축물은 형상마저 독특하다.어느 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외계에서 날아온 것 같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그렇다고 굳이 어떤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그저 ‘아’라는 감탄사로 족하다.여기서는 직선을 찾기도 힘들다.김석철씨가 “자를 대지 않은 도면을 오랜만에 그렸다”라고 할 정도로 곳곳이 둥근 모습이다.제주의 오름이 둥그스름하듯 자연을 닮았다.외벽은 온통 하얗게 칠해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순수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또한 생명을 창조한다는 것은 자연파괴와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영화박물관은 애초의 자연을 받아들였다.주위에 있던 소나무밭과 야자수를 적적히 활용,건축물의 주위환경으로 도입했다.

김석철씨는 이렇게 얘기한다.“자연을 배제한 문명의 시대는 갔다.영화박물관은 인간이 자연에 바친 인사이기도 하다”라고.<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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