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용 재외동포재단 동포단체지원부장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멀리 바다 건너 국위를 선양하며 고군분투하시는 우리 해외동포 여러분'

1960년대 스포츠 중계 단골 멘트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껏 감격에 찬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전 세계 한인들을 하나로 묶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단골 멘트 속 해외동포, 다시 말해 재외동포는 오랜 세월 잊힌 존재였다. 

재외동포는 현재 전 세계 180개국에 750만명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14%에 이르는 재외동포가 세계 각국에 퍼져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외동포라면 보통 한국계 미국인을 먼저 떠올린다. 아마도 두 나라가 한국전쟁으로 맺어진 혈맹인데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특별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공산 국가인 쿠바나 중앙아시아에도 많은 한인이 살고 있지만, 오랜 세월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탓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쿠바의 한인 2세 헤로니모(임은조)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1926년 쿠바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1900년 초반 멕시코로 강제 이주됐다가 이후 쿠바에 정착했다. 당시 머나먼 중남미로 이주한 건 나라를 잃은 탓이었다. 헤로니모는 대학 동기였던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끌었고, 식량산업부 차관까지 올랐다. 그는 2006년 눈을 감기 전까지 쿠바 한인 사회 재건을 위해 힘썼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아나톨리와 정 알렉산드르, 낯선 이름과 익숙한 성을 가진 그들은 우즈베키스탄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다. 이 아나톨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존경받는 파일럿으로 정부로부터 은성훈장까지 받았다. 정 알렉산드르는 IT 전문가로 우즈베키스탄 정보통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인 후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전 대통령은 "고려인들을 통해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았다. 부지런하고 의무감이 투철하며 솔직하고 성실한 그들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750만 재외동포들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편견을 이겨내고 우뚝 섰다. 이제는 양국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 역할까지 맡고 있다. 문제는 재외동포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다.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의 재외동포들은 반기는 반면 중남미나 중앙아시아 등 중진국 혹은 후진국의 재외동포는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선은 재외동포에게 큰 상처를 준다. 특히 1.5세대와 2세대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그들을 조국조차 외면한다면 한민족의 경계를 축소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유대인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밖에 사는 유대인의 정의를 넓게 잡는다. 단 몇 분의 1이라도 피가 섞이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 민족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세계 각지에서 정체성과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고 사는 한인 공동체)의 역사는 186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인들은 나라가 약해서 자의, 타의로 고향을 등졌다. 나라 잃은 아픔을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어느덧 1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강국으로 성장했다. 160년 만에 우리가 내미는 손이 편견이어서는 안 된다.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재외동포 초청 행사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서로 올바로 이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 그럴만한 국력도 갖췄다. 오는 5일은 '세계 한인의 날'이다. 올해가 더 뜻깊은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가족, '재외동포'를 기억하고 상생의 관계를 써나가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