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규 제주대학교 교수 논설위원

얼마 전 현실을 기반으로 그 위에 가상이 겹쳐지게 하는 컴퓨터 기술인 증강현실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려고 수많은 사람이 사냥 장소(?)를 찾아 헤매던 일이 있었다. 2016년 여름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스마트폰 게임이 있었다. 바로 미국에서 발매된 스마트폰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고'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하여 증강현실기술이 제주의 문화콘텐츠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 제주도가 가진 다양한 문화요소를 증강현실기술과 결합하는 콘텐츠산업을 지역역점 산업으로 육성하지는 취지였다. 

그런데 2019년 현재 '포켓몬 고'는 완전히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이에 따라서 필자의 견해가 다소 설득력을 잃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포켓몬 고'는 증강현실 게임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며, 증강현실기술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지금도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엉뚱한 말인 것 같지만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유럽의 로마에 나타나서 소개해본다.

15세기 말 로마 황제 티투스의 목욕탕 근처 지하 통로에서 동굴이 발견됐는데, 복도로 연결된 회랑과 궁륭천장이 있었고 프레스코화로 채색된 벽면들이 가득했다. 짐승, 새, 물고기, 식물 등이 서로 얽혀 이종 교배된 모습이 즐비했다. 르네상스 화가였던 라파엘로는 이 그림들을 '동굴(Grotto)에 속한'이란 뜻의 '그로테스크(Grotesque)'라 불렀다.

그로테스크는 충격과 매력을 지닌 채 곧 온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16세기 초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면서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Domus Aurea)임이 밝혀졌다. 네로가 자살하고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이 궁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원형경기장을 세우게 된다. 서기 72년에 시작돼 8년 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 황제에 의해 완공된 원형경기장은 '거대하다'는 뜻의 콜로살레(Colossale)에서 유래된 '콜로세움'으로 명명되었다. 이후 콜로세움은 로마의 대표적 유적지가 됐지만 그 바로 밑에는 그로테스크한 가상의 존재들이 벽면과 천장에 장식돼 있었다. 

2019년 4월 이후 네로의 궁전 지하 입구에는 헤드셋이 준비돼 있다.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관람객들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펼쳐진 가상 속에서 새로운 마법에 빠져든다. 반면 네로가 생존했을 1세기만 해도 황금궁전은 현실과 가상이 함께 펼쳐져 있었다. 감상자들은 현실의 회랑과 방, 그리고 천장을 바탕으로 펼쳐진 그로테스크한 일종의 가상을 결합시켰다. 현실에 가상이 추가되는 것이 오늘날의 증강현실 기술에 해당된다.

가까운 반면 헤드셋을 쓰고 현실을 차단한 후 헤드셋 속 궁전에 몰입하는 것은 가상현실에 가깝다. 그러니까 10여년에 걸친 복원 끝에 되살아난 네로의 황금궁전은 2000년 전 인간이 누렸던 증강현실을 가상현실로밖에 체험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헤드셋을 벗는 순간 화면 속 가상들이 일순간 흩어지면서 즉시 허무감이 치솟는다.

제주에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다양한 문화요소가 지역 내에 산적해있다. 증강현실기술은 이런 제주의 문화자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기술 중 하나이다. 또한 이런 문화자원의 가치 상승은 관련 콘텐츠산업의 육성에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지역문화의 홍보와 활용에 좋은 수단이 돼 지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점은 단순 산업활용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멀리 로마에서 보여주는 사례가 우리 제주지역의 문화자원 활용방안 마련에 좋은 길잡이가 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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