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화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홍보대사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이 쉽게 글자를 배워 문자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만든다'고 훈민정음 서문에서 밝히셨듯이 단 28개(현재쓰는 문자는 24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세상 모든 말을 기록할 수 있는 기적을 이뤄낸 고마움과 세종의 민족자주정신과 민본주의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된 시기다.

거친 원석도 갈고 다듬으면 보석이 되듯 말과 글도 갈고 닦고 다듬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예술이 된다. 그런데 예전에는 '말'(음성 기호나 문자 기호로 나타나는 사고의 표현 수단)과 '글'(어떤 일이나 생각을 문자로 나타낸 기록)의 경계가 비교적 또렷했는데 IT기술이 발전할수록 말과 글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말과 글이 '일체화'되는 추세다.

즉 현대인은 직접 대화보다도 SNS를 통해 말보다 실시간 글로 의사를 주고받고, 더 나아가 글보다 동영상(말)을 통해 만인에게 주장과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언어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이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한다. 아마도 요즘 태어난 세대는 죽을 때까지 평생 5백만 마디의 SNS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말과 글은 곧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에도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직장인이 많이 읽는 자기계발서 가운데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는 단연 화술과  관련된 책이다. 그런데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갑자기 말을 잘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왜 그럴까. '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이다'는 명제와 관련이 있다. 말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 그리고 본성이 집약되어 나오는 것이다.

'먼저 실천하고 그다음에 말하라'는 짧은 한 마디는, 공자가 번드르르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제자 자공을 꾸짖은 말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차원을 뛰어넘어, 먼저 행동하고 말을 하는 경지에 이른 공자였기에 그 말에 울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말한다'는 뜻으로 말을 할 때는 신중히 생각한 후에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나 멋진 말을 흉내내서 언론에서, SNS상에서 돋보이고 뽐내어 보려 해도 그 결과는 그 마음 같지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말이 기술이나 재주에 머물면 금세 밑천이 드러나고 마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고, 또 설득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단지 말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 

다가가면 따뜻하고, 말은 합리적이며, 바라보면 기품과 위엄이 느껴지는 사람, 그러한 사람의 말을 옆에서 듣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날라오는 속보형식의 SNS글이 아니라, 진정성있고 애정어린 말과 글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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