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 /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최근들어 우리나라의 커피 선호도는 굉장하다. 스타벅스 같은 국제적인 체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호황을 누리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문화 현상임이 분명하다. 과거는 다방에서 주로 커피를 팔았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카페로 바뀌고 더욱 전문화됐다. 점심시간을 지나면서 한 손엔 휴대전화, 또 다른 한 손엔 커피잔을 든채 거리를 누비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가 됐다. 

왜 한국인들은, 특히 젊은 세대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일까. 과거에는 커피를 마셔야 문화인으로 봤다. 그러나 오늘날 커피를 선호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멋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습관적으로 다들 마시니까 나도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어떤 절실함이 따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과거 한동안 다방이 문화 살롱 구실을 한 적이 있었다. 해방 후부터 대도시에 다방이 생겨났으나 동란이 나고 부산 피난 시기에 급속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환도 이후 자연스럽게 서울로 이어진 것이다. 피난 시절엔 정보교환의 매개체로써 다방만한 곳도 없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서만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일정한 거처가 없었던 사정들이여서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급변하는 전시상황을 서로 맞대고 논할 수 있는 장소로서 다방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점차 다방이 그 나름의 전문화가 되는 성격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는데 끼리끼리 모이는 장소가 됐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다방이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다방이 있었다. 특히 문인이나 미술인들 같은 특정한 문화계 사람들이 모이는 다방이 생겨나기도 했다. 환도 후 한동안은 대개의 예술가들이 일정한 거처가 없이 보헤미안처럼 동가숙 서가식하는 형편이다 보니까 다방이 이들의 연락처로서의 기능을 자연스레 물려받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는 몰라도 어느 다방에 주로 출입을 한다는 것은 알려져 그에게 오는 우편물이 자연 단골 다방으로 배달됐다. 전시중이었던 50년대 초반은 미술 전람회가 주로 다방에서 열렸다. 부산의 르네상스니 금강이니 밀다원다방은 미술가를 비롯한 예술인들의 아지트일 뿐 아니라 화랑으로써의 구실도 충분히 했다.

오늘날엔 그러한 살롱의 역할은 없어진 대신 특히 젊은 남녀가 만나는 장소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과거엔 다방에 들린다는 것은 일정한 용건이 주목적이지만 오늘날 카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목적이 앞서는 것 같다. 특히 점심에 붐비는 것을 보면 식후엔 으레 커피 한잔인 것이다. 그렇다면 식후와 커피의 어떤 독특한 관계의 요체(要諦)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음식 가운데 커피 맛과 연결되는 것 하니까 떠오른 것이 숭늉이다. 솥에 밥을 짓고 바닥에 약간 탄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는 것이 숭늉인데 밥을 먹고난 뒤는 후식처럼 이 숭늉을 마셨다. 구수하면서도 개운해서 후식으로 제격이었다. 전기 밥솥이 나온 이후는 점차 누룽지니 숭늉이니 하는 것이 없어졌다. 옛 향수 때문에 누룽지를 일부러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역시 옛 맛에는 이르지 못한다.

원래 커피는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인들의 기름기를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선호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설탕 같은 것을 넣지 않고 블랙커피를 주로 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들도 블랙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젊은 층들이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식문화가 육식 중심의 서양식으로 많이 경도된 탓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김치가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채식이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식후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개운치 않은 것은 숭늉을 마시던 유전적 인자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의 식습관의 유전자가 숭늉에서 커피로 자연스레 옮겨진 것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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